더듬더듬 어둠 속에서 낙타가 걸어온다
모래알갱이 점자를 해독해 가며
나침판 같은 하얀 지팡이 하나로 사막을 횡단 하는
낙타가 걸어온다
강변 건너 테헤란 지날 때,
버짐 핀 소쿠리에 하모니카 부는 어린 낙타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빌마*의 노랠 부르는 등 굽은 늙은 낙타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지하 터널과
역사, 그 빈 공간까지 사막의 모래바람을 나른다
이따금 카라반들이 던져 주는 동전이
가난한 손위에 사막의 빗물처럼 고이고
두꺼운 유리 벽 안, 연한 눈썹 아래
깊게 침묵한 슬픔들이 퇴적암처럼 쌓이는
건조한 시간 속을 헤쳐가고 있다
아주 오래 어둠 속에 갇히면
그 속에도 길이 보이는 걸까
캄캄하고도 환한, 열풍의 길을 간신히 밝히며
낙타가 걸어간다
지하철 전동문이 알리바바의 주문처럼 열리고
검은 유리창에 박힌 얼굴들 서둘러
지상으로 향한 모래계단을 오른다
서울, 가장 낮은 곳으로 내통한 길의 사막에는
어둠을 끌고 가는 낙타가 있다
*빌마(Bilma):사하라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 소금호수가 있는 모래절벽으로 카라반들에게 노래를 불러 길을 인도 한다는 전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