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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네비우스 선교전략과 UBF의 미래 선교준비
작성자
뇌비우스
작성일
2009-11-07
조회
5390

네비우스 선교전략과 UBF의 미래 선교준비

이사무엘 목자


말씀/마태복음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사도행전 20:32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라.”

들어가는 말

UBF 전문인 자비량 선교의 역사가 40년이 되어갑니다.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을 통해서 독일에서부터 시작하신 현지 캠퍼스 지성인 전도 및 제자양성이라는 성령님의 역사는 미국, 영국과 같은 과거의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에서 뿐 아니라, 세계 90개국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시카고의 란 워드 목자를 비롯하여 현지인 목자들이 지부 책임자요 메신저로 세움받는 역사가 시작되고, 블라드미르 포인트 선교사와 같이 현지인 제자 출신 선교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어도 100년 앞을 바라보는 안목에서 본다면 선교현장에서 깊이 생각하며 기도해야 할 제목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현지인들을 리더로 세우는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좀더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선교신학자 전호진 박사는 한국교회가 선교의 기간에 비해 세계 어느 선교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이룩한 데에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네비우스의 3자원리를 적용한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네비우스 선교전략은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곧 성경의 전략입니다.

I. 네비우스 선교사의 생애와 사역

존 L. 네비우스(John L. Nevius) 는 화란계 후손으로 1829년 3월 4일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오비드 아카데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6세에 유니온 대학에 입학하여, 그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850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1853년에 24세의 청년으로서 북장로교 선교사로 지원하였습니다. 그 해 뉴욕 출신의 헬렌 산포드 코아 양과 결혼한 후, 곧 그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선교부는 그를 중국의 닝포 지방에 배치하였는데, 그것은 네비우스의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중국에 도착하여 양자강과 산동성을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다가 1893년 10월 19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음으로 40년 간의 선교사 생애를 마감하였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돈을 주고 원주민 사역자를 고용하여 전도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기대하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에 실망한 네시우스는 안식년을 맞아 귀국했는데, 이때 영국의 헨리 벤(Henry Venn)과 미국의 루프스 앤더슨(Rufus Anderson)에 의해 제시되어진 삼자원리(three­self formula)를 중심으로 하는 토착교회 설립전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사도 바울의 선교 방법을 전략화 한 것이었습니다.

헨리 벤과 루프스 앤더슨의 삼자원리가 태어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윌리엄 케리 이후 개신교의 선교는 주로 선교기지(mission station) 중심의 접근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선교기지에는 선교사들의 숙소와 교회, 서구식 학교, 병원, 때로는 인쇄소 시설까지 갖추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선교기지 내에 모여 살면서 사람들을 이 선교기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이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심자들은 선교사들에게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었고, 현지 지도력이 개발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배경에서 헨리 밴과 루푸스 앤더슨에 의해서 새롭게 토착교회 설립전략이 제시되었습니다. 토착교회 설립전략은 현지인들 중심의 교회를 설립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이들은 토착교회의 핵심 개념으로 자립, 자전, 자치의 삼자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여기서 자립이란 현지교회가 선교사들의 선교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재정적으로 독립되어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자전은 현지인 교회 스스로가 선교사의 도움이 없이도 복음을 전파하고 증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치란 선교사들의 지도력을 벗어나서 현지인 지도력에 의해서 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이 삼자원리는 오늘날 관점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당시 서구인의 가부장적 선교상황에서는 충격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은 아프리카에 교회를 개척했지만 현지인을 사제로 안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룩한 성직을 교육도 못 받고 기독교적 전통도 없는 아프리카인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밴의 영향력으로 아프리카인 사제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앤더슨의 영향으로 선교사들이 현지교회의 재정을 다 공급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상황이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삼자원리는 오늘날 모든 토착교회 설립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네비우스는 이 전략을 통해 자신의 사역에서 기대하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는 원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옛 방법’을 강력하게 부정하였고 배격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비전을 갖고 중국으로 돌아가 산동 지역에서 소위 삼자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새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많은 선교의 결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비우스는 자신의 사역에서 경험하고 발견하는 역사들을 챠이니스 리코더(Chinese Recorder)라는 선교사들의 잡지에 계속하여 기고했습니다. 나중에 이 기고문들이 모여 ‘선교지 교회의 개척과 발전’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핵심은 자립, 자전, 자치의 삼자원리를 통한 토착교회 설립이며,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철저한 성경공부를 통한 변혁이 일어나야 하며, 선교사들은 이 변혁의 조력자들로서 이를 섬기기 위해 현지 언어습득, 문화이해를 해야 하고(언어훈련 강조), 궁극적인 변혁의 주체들은 현지인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현지인 지도자 세우기, 평신도 운동 강조). 그리고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는 토착적인 교육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II. 한국선교에서의 네비우스 전략

네비우스의 선교경륜 32년째요, 자신의 전략을 정립시켜 가던 시기인 1885년, 한국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미국 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한국에 도착하여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정부의 선교금지령이 거두어지기를 기다리던 선교 초임자인 언더우드는 언어를 배우며 한국 땅을 어떻게 하여야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계속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에 매료된 언더우드는 네비우스 선교사에게 한국을 방문해서 그의 선교전략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한국에 주재하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이들로서, 그들의 새로운 선교 사역을 위하여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선배의 가르침이 필요하였고, 이 일을 위하여 네비우스 박사를 초청한 것입니다. 5년 뒤인 1890년 네비우스 박사는 안식년으로 귀국하던 길에 제물포를 통하여 서울로 와서 장로교 선교사들과 열흘을 유하면서 자신의 전략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때 네비우스에 의하여 주어진 전략적 제안들을 언더우드는 다시 한국적 상황에 재적응시켜 1891년에 한국 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전략으로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1) 자립
네비우스 선교전략을 채택한 결과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자립원리’를 따라 전개되었습니다. 백낙준 박사도 “소래와 제물포의 교회들은 한국 그리스도인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자립원리의 한 단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교회당 건축에 있어서 외국 돈의 도움이 없이 한국 교인들의 힘으로 건축되었습니다. 1909년도 한국 선교 25주년 기념의 해외 선교보고는 당시 한국교회 총 사역자 1,052명중에서 94%가 한국교회에 의해 전적으로 재정을 지원 받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고, 같은 해에 각 선교 지부 내의 총 800여 교회 건물들 중 20여 개만 선교기금으로 건축되었고, 나머지 780여 개는 한국 교인들의 헌금으로 세워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립의 원리는 교회 설립 뿐 아니라, 학교 설립, 성경의 배포, 그리고 병원 사업 등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선교부에 의하여 재정적 지원이 있은 것은 20분의 1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2) 자전
한국 교회의 자전은 자립과 연결된 관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조직하고, 이들이 나아가 전도하여 지교회(개척센터)를 세웠는데, 이러한 관계가 자립과 자전의 유대를 보였습니다. 자전하는 방안은 순회설교, 노방전도(전도 피싱), 사랑방 전도(그룹성경공부), 여인숙전도(기숙사 심방), 문서의 배부(강의안 보내기), 부흥회(여름수양회), 사경회(성경학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났습니다. 장로교회는 교회 설립, 교육, 의료선교에 있어서 자전하는 교회로 성장하고, 복음 전파에 최대의 역점을 두었습니다. 교회나 기독교 기관이나 모든 교인이 스스로 전도하는 자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노력한 것이 한국교회의 한 특색이었습니다.

(3) 자치
자치는 자립과 자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자립과 자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의 자치는 초창기부터 실시되었습니다. 자치에 관한 네비우스의 생각은 지교회에서 현지인 평신도 지도자를 뽑고, 그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네비우스는 문화권 내에서 실제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현지인 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지역교회의 지도자를 맡지 않고, 처음부터 한국인이 지도자의 위치를 맡도록 하였습니다. 초기에는 이 지도자들은 급료를 받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자비량 목자)이었습니다. 후에 교회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유급 교역자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과 함께 한국교회사에 일어난 큰 사건은 그해 9월 17일 평양에서 전국장로교 독노회(총회)가 처음으로 결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총회는 미국 선교사 38명, 한국인 장로 40명으로 구성되어, 첫 회의부터 한국인 대표자가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4) 조직적인 성경공부
네비우스는 성경공부를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는 달리 농경사회 중심이었으므로 주중의 저녁시간에 성경공부가 많이 이루어졌고, 모든 교인들은 성경을 배우는 것을 의무로 여겼습니다. 때로는 지역별로 연합되어진 사경회가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사경회는 설교보다는 성경강해를 중심으로 한 집중적인 성경공부의 성격을 더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성경학교). 네비우스의 자립의 원리도 성경공부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가 붙든 말씀은 행 20:32절로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행한 고별설교 중에 나온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라.” 그는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자립의 영적기초를 삼았습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을 읽는 교회의 전통을 확립하였습니다. 미국교회 선교운동가인 존 모트(John R. Mott)박사가 아주 흥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전쟁이나 엄청난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인쇄된 성경이 다 없어졌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염려할 것 없다. 한국교회의 몇몇 신자들을 불러서 성경을 외우게 하면 다시 복원할 수 있다.” 알렌 클라크 박사는 자립, 자전, 자치의 3자 원리의 성공비결은 성경공부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네비우스의 자치의 원리도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그는 현지인 사역자를 양성하여 교회를 맡기면 교회가 곧 약화되거나 와해된다고 하는 우려를 과감히 배격하고 바울의 원리를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그곳을 떠날 때 자주 디모데 혹은 실라 혹은 다른 사람들을 남겨두어서 몇 날, 몇 주 동안 그들을 지도하고 세우며 위로하도록 했다. 또한 각 교회에 특별한 사자들을 보내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악습을 고치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어느 한 사람도 그곳에 거주하는 목사로서 그들과 함께 지내도록 남겨놓은 것을 읽을 수 없다. 이 사도의 본을 따르지 않을 때, 우리는 자주 각 은사의 성장을 저지시키고 자립을 막을 뿐 아니라 교회내의 활동적인 힘을 억제하게 된다. 또한 처음부터 그들을 약하고 무력하며 의존하도록 만든다.”

(5)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
성경 다음으로 삼자원리의 영적기초는 교회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네비우스는 바울처럼 선교사들은 어린양들을 주님과 주의 말씀과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는 단순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 주님과 그의 성령이 교회에 필요한 여러 종류의 사역자들을 세우시며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이렇게 피력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어린 신자들을 그들이 믿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사도 바울은 주저함이 없이 이 방법을 취했으며, 나 역시 우리들이 그 본을 따르지 말아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우리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거할 큰 은혜인 축복된 성령을 보내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주셔서 선지자들, 교사들, 능력자들, 돕는 자들과 다스리는 자들을 필요한대로 보내주실 것이다.” 네비우스는 어린 교회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삼자원리를 외쳤던 것입니다.

(6) 언어훈련
네비우스 선교전략의 핵심이 성경에서 나왔고, 또 철저한 성경공부를 강조하여 현지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도록 하였으니 필연적으로 현지어 정복과 훈련을 매우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7) 평신도 운동
네비우스는 교회성장에서 성직자 중심의 교회관이 아닌 평신도에 의한 교회의 성장을 처음부터 시도하여 이것을 한국의 젊은 선교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렇다고 목사의 존재와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혁주의 선교학자 바빙크도 네비우스의 자립원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고용된 사역자가 많은 곳이 아니라, 오히려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전도하는 곳에 교회가 부흥한다는 사실을 한국과 인도를 실례로 들고 있습니다.

이 외에 네비우스 선교전략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엄격한 치리, 다른 지역 모임과의 협력, 법적인 문제 불간섭 원칙, 선교사간의 협력 등이 있습니다.


III. 네비우스 선교전략과 UBF의 미래 선교준비

(1) 일반적인 고찰
1. 하나님께서 우리의 공동체를 개척조상들을 통하여 처음부터 온 힘을 기울인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 세우시고, 이를 지켜오게 하신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를 더욱 굳게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덧붙인다면, 앞으로 계속하여 성경 66권이 연구되고 공부됨으로서, 성경의 숲과 나무를 다 보는 내공들이 쌓이게 하는데 마음을 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으로 일으키신 것도 큰 축복입니다. 이를 끝까지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평신도) 자비량 선교라는 노선을 놓치지 않는다면 지켜갈 수 있습니다.
3. 자립(자급), 자전, 자치의 3자 원리 중에서 자립의 원리가 잘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개척 조상들에게 철저한 성경공부의 토대 위에 자립정신과 주는정신을 주셔서 이를 신앙의 유산으로 물려받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요 크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교사들의 자립정신 뿐 아니라, 선교지의 양들에게 처음부터 자립정신과 주는정신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이 자립정신과 주는정신은 계속하여 더욱 성장해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4. 자전과 자치의 원리에 대하여 생각할 때, 자전의 역사도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해외 선교 39년을 맞은 우리 UBF가 기도하고, 연구하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할 것은 현지인 리더쉽을 세워 가는 자치의 원리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자치의 원리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이를 실천하지 않으면 선교의 역사는 선교사 1세대로서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2) UBF 선교에 자치의 원리를 적용하기 위한 제안
1. 선교사는 처음부터 현지인 목자를 세우는 분명한 방향과 사역의 목표를 갖고 개척역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리게 보이더라도 현지인 목자를 과감하게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리더는 책임을 감당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가 계속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수록 현지인 리더들은 성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선교역사도 힘들게 될 것입니다.
2. 어느 정도 개척이 이루어졌을 때 한국인 선교사가 현지인들보다 더 수가 많으면 한인교회의 분위기가 생기고, 현지인들은 소외감을 느끼며 성장하지 못합니다. 지부 책임자들은 이런 상태에서도 한국인 선교사를 더 모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한국인 선교사들을 5년 정도 현지 언어습득과 문화적응 등으로 준비시킨 후 과감하게 다른 지역으로 내보내어 개척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선교철학이 없이는 미래를 기대하기 힘듭니다.
3. 선교의 파워 스테이션이 필요하고,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선교지부에 선교사들이 어느 정도 모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교의 파워 스테이션은 한 나라에 하나 정도가 좋을 것입니다. 모든 선교지부 책임자들이 자기가 섬기는 지부가 파워 스테이션이 되기를 바란다면 후배 선교사들도 모두 그 예를 따르려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지부가 점차 한인교회화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선배 선교사들이 사도 바울적인 선교의 모델을 보일 때 미래 선교에 희망이 있습니다.
4. 한국에서 파송된 모든 선교사들은 필요한 선교훈련을 받고 각자 선교의 소명을 따라 파송됩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에서는 지부장은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들은 한 선교지부에 속한 교인으로 머물 수 있습니다. 훈련 받고 파송 받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교인화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큰 손실이며 본인들에게도 비극입니다. 안주하는 것은 편할지 모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꼭 동역에 필요한 선교사들만 남고 적극적으로 흩어져 개척해야 합니다.
5. 일찍 개척이 시작된 나라에서도 몇 지부에는 선교사들이 몰려 있는가 하면 대부분의 선교지부는 한 가정 혹은 두 가정이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세 가정 정도 그릇을 이룰 수 있도록 선교사재배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사 재배치에 따르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않을 때 미래 선교의 전망은 어둡습니다.
6. 현지에서 태어나서 자란 2세들에게 2세 선교사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가 현지인과 동일하다 하더라도 2세 선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고, 그들에게는 선교사이면서 동시에 현지 목자도 되는 2중 직분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입니다. 2세 중에서 준비가 되면 한 지역을 개척하여 지부장으로도 세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이상의 제언들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
이상의 제언들을 실천하기 위한 준비로는 선교사들이 “선교사란 누구인가?”에 대하여 처음부터 분명한 정체성을 세우고 선교역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끊임없는 영적 성숙을 통하여 자신을 비우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선교사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공동체에서 개척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사들이 마른 땅을 파서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청춘을 다 바쳐 개척역사를 감당합니다. 그런데 현지인 지도자를 책임자로 세우고 모든 것을 내어주고자 할 때, 자기 상실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누구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처음부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겪어야 합니다.

첫째, 부모의 단계입니다. 초기 개척기에 현지인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와 같고, 선교사는 영적 부모의 위치에 있는 상황입니다. 부모란 어린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공급해주는 존재입니다. 피싱하고, 전도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양육하고, 훈련하고, 메시지를 섬기고, 예배를 섬깁니다. 이런 중에도 선교사의 목표는 잠재적 현지인 지도자를 찾아내고 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현지인 리더를 양성하여 세우고자 하는 그림을 갖고 선교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선교지 교회의 지도자는 결국 현지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이런 그림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그림이 없이 선교를 한다면 그 선교지부는 토착교회로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둘째, 동역자의 단계입니다. 현지인 지도자가 성장하게 되면 적절한 시기에 선교사는 부모의 역할에서 동역자의 역할로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야 합니다. 동역자의 단계란 현지인 지도자와 선교사가 모든 면에서 대등한 관계에 있는 상황입니다. 사역의 비중에서도 대등하도록 노력하고, 모든 의사결정에서도 서로 동등한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기는 ‘갈등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는 부모의 단계에 있을 때 힘들지만 가장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가 갈등을 두려워하여 계속 부모의 단계에 남아 있고자 한다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선교지에서 일생을 드려서 헌신했는데 현지인 리더나 성도들과 불편한 관계가 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고, 교회에도 덕이 되지 않고, 본인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는 고통을 겪으면서 현지인 지도자를 세워야 합니다.

셋째, 후원자의 단계입니다. 현지인 지도자의 후원자로 한 걸음 더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특히 그 시기(timing)를 놓치면 안 됩니다. 선교사는 현지인 지도자를 자신이 키웠기 때문에 그의 영적 성장 과정을 다 알고 있는데, 또 그의 미숙함이 눈에 띄는데, 이제는 자기가 키운 지도자에게 선교사가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당한 영적 인격적 성숙과 겸손 없이는 기쁘게 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사의 삶입니다.

현지인들에게 리더쉽을 물려준 후에는 현지인들이 할 수 없는 분야의 일을 찾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담, 순회심방, 일대일 성경가르침, 성경연구, 문서사역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다시 개척한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같은 언어권에서 다른 지역을 개척한다면 가장 바람직 할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사 생활 20여 년의 1-3차 선교 여행과 및 로마 체류 동안 소아시아 전역, 유럽 전역을 개척하여 현지인 리더들을 세우고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심지어 로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복음 전도로 로마 개척의 기초를 놓고 순교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말년에 그의 손에 남은 것은 낡은 성경두루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철저히 자비량 하였습니다. 그의 선교의 모델은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까지 아무 조건 없이 죄인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일생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고자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선교사는 목회자라기보다는 개척자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을 키우고 세워서 사역을 넘겨주고, 자신은 다시 개척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개척하기 전에 국제본부나 한국본부에서 1년 정도 재충전 및 새로운 설계를 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제도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인생목적이 순수해져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기도제목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일생 첫째 기도제목이 되어야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소서!”하는 기도제목이 첫째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청춘과 생애를 쓰셔서 이 땅에 UBF라는,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 자비량 선교를 통한 세계 복음화를 섬길 특수사명을 감당하는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이 역사에 무수한 주의 백성들을 일으키시고 우리의 공동체를 세계 구속사에 귀하게 사용하셨고, 사용하고 계십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처음부터 마더 배리 선교사님께서 이사무엘 현지인 목자님을 세우시고 뒤에서 기도와 섬김으로 동역자요 후원자의 역할을 40여년간 감당해오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축복하신 점도 크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자립, 자전은 물론 자치에 있어서도 우리 공동체의 개척자들은 네비우스 선교 전략을 실천한 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 2041년까지 10만 명 선교사들이 양성되어 세계 233개국 캠퍼스에 파송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통한 세계구원 역사에 우리 UBF를 하나님의 그릇으로 사용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네비우스의 자립, 자전, 자치의 3자 원리와, 철저한 성경공부, 캠퍼스 제자양성과 전문인 자비량 선교운동을 더욱 힘써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라.”(행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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