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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천리 강산을 시로 덮으렵니다
작성자
태혀니
작성일
2009-07-27
조회
7890

시인 고은 님

음력설을 쇠는 것까지도 조선의 것이라 해서 금지 당하고 급기야는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치길 강요받았던 슬픈 식민지 시절, 국민하교 3학년인 다카바야스 도라스케라는 조선소년은 어느 날 일본인 교장 아베로부터 '장차 무엇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평소 부끄럼을 잘 타 얼굴이 자주 빨개지곤 하는 도라스케 소년은 그날만큼은 목청을 돋워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천황이 될 것입니다.” 소년은 그날부터 천황모독죄로 3개월간 노역을 하여 가까스로 퇴학을 면했다.

일본 천황이 되겠다던 야무지고 순수함으로 해서 겁없던 천진난만한 소년은 천황자리보다 더 높은 조선의 큰 시인이 되었다.

그 소년이 바로 36년간 우리 문학사의 중심에서 굵직한 줄기를 얽어온 고은이다. 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최일선에서 당당히 싸워 온 시인은 격변의 역사를 넘어 어느새 육십이 되었다.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해한다는 '이순'의 나이지만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쓰겠다'는 시인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지난해 회갑기념으로 묶어 낸 시집 <아직 가지 않은 길>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다 왔다고 말하지 말자 / 천리만리였건만 / 그동안 걸어온 길보다 / 더 멀리 / 가야 할 길이 있다.」

육십의 나이에 아직 가야할 길이 더 멀리 남았다고 외치는 시인 고은,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서린 시퍼런 젊음의 향기는 주위사람들까지 은은히 퍼져 모두를 희망적이게 만든다. 그의 시는 우리 삶을 눈뜨게 하여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가게끔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의 생명력과 「조국의 별」「시여 날아가라」「만인보」「백두산」등 백여권이 넘는 책을 낼만큼의 엄청난 창작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현실에 발을 딛고 어린애와 같은 천진난만한 시각으로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고, 어제와 내일을 분리시키지 않고 오늘 이 현실 속에서 같이 뭉뚱그려 생각하고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결코 책상머리에서 나오는 단순한 너스레가 아니다.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부딪히고 깨지면서 고민해 온 살아 있는 시이다. 그것은 그가 걸어온 치열한 삶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이 곧 조국의 역사인 셈이다.

1933년 8월 1일 일제시대 태어난 시인은 만주사변, 중일전쟁, 해방과 분단, 6·25, 4·19혁명, 군사독재 30년 등의 세월속에 살아왔다.

해방이 되어서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친일파 교장을 배척하는데 앞장섰으나 6·25전쟁 후에는 동족상잔의 엄청난 현실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갔다.

1958년 승려시인으로 문단에 나온 그는 1950년부터 이어온 현실에 대한 허무감이 극을 달해 조계사 마당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달빛이 서러워 밤새도록 울기도 했다. 그러다 자실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10년만인 4·19 혁명 직후에 환속하게 되었다. 1970년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청계천 피복 노동자인 전태일이 혹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을 견디다 못해 분신한 기사를 읽고 그제서야 자신을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깨달았다. 그는 비로소 허무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71년 3선개헌 반대운동을 비롯 군사독재와의 싸움, 통일운동의 맨 앞에 서왔다. 그 일로 안기부 지하실에 자주 불려 다니기도 했고 고문 후유증으로 한쪽 고막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걸어온 '저항의 삶'이 이 땅의 역사가 베풀어준 은총이라고 믿는다. 모진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마다 그는 자신을 새롭게 갱신해 나갔고 스스로 앞으로 나가도록 다그치는 용기를 갖게 되었으며 시대의 불화와 싸워온 그의 정신적인 무기인 '시'를 더욱 단련시켜 왔기 때문이다.

문단에 나온지 36년, 그 동안 시인에게는 '어떻게 사느냐'라는 문제가 '어떻게 쓰느냐'라는 고민과 통할 정도로 그의 삶 자체는 곧 시였다. 그만큼 그는 두어줄 되는 시부터 수백행에 이르는 서사시까지 우리나라의 어느 시인보다도 시를 많이 썼다. 그 양적인 면도 놀랍지만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어느 시 한편 허투루 흘려 보낼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곧 그가 우리 문학이 도달한 가장 높은 봉우리임을 인정하게끔 하는 것이다.

'한 작가가 어제 썼던 것을 오늘 쓰면 그것은 죽음이다'라고 말하는 시인 고은. 인터뷰 하기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쓴 소설의 교정을 보고 있었다. 넥타이를 뒤로 젖히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문장을 고치고 다듬느라 열심히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눈으로 쫓았다. 거기에는 투사의 모습도 시인의 모습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단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아름다움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 꿈꿔온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시인은 딱 한마디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세상―시인이 말하고픈 아름다운 세상이란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

그의 글과 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씨앗이 틀림없다. 그리고 방금 또 하나의 씨앗이 뿌려졌다. 그는 일을 끝냈는지 주섬주섬 원고를 챙기고 있었다.


*좋은 글이라 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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