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다닐 때 내 별명은 색시였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항시 말없이 앉아 있던 나. 그 무렵 한 국어 선생님께서 “관하, 너는 나중에 문학을 하면 좋을 것 같아. 열심히 해 봐.” 그 말씀이 나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었다. 지금 나는 국어교사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교사의 말 한 마디가 이렇게 학생의 인생향방을 정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한다.
고등학교 학생일 때에는 문예기자부 후배였던 한 예쁜 여학생이 붙여준 별명, ‘작은 새’가 있었다. ‘작은 새’는 ‘영훈 문학의 밤’ 때 읽었던 나의 수필 제목인데, 그 당시에 강평자로 오셨던 황금찬 시인께서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그 이후로 내 별명은 작은 새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그때까지도 ‘샌님’으로 불려지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에는 나를 좋아했던 한 여대생이 붙여주었던 ‘어린 왕자’가 내 별명이었다. 그 때 나는 몸무게 47킬로그램, 허리 사이즈가 23인치였다. 머리는 장발로 앞가리마를 타고 반꼽슬 머리칼은 저절로 웨이브가 졌다. 그 여학생은 내 생일에 긴 망토 같은 옷을 왕자복이라고 사 주며 나에게 ‘나의 왕자님“이라고 불러주었다.
지금의 아내는 그 여학생이 물론 아니다. 나를 좋아하던 그 여학생은 대학 3학년에 나를 배신하고 딴 남자에게로 갔다. 나는 그 때부터 “여자는 다 못됐어.”하고 읊조리며 다니다가 긴 머리를 빡빡 깎고 대학 4학년 때 군대를 갔다. 군대에 갈 무렵 미술을 전공하는 한 여대생을 만났다. 그 여학생이 붙여준 별명은 ‘나르시소스’, 그리고 ‘하얀 천사’였다. 그러나 대학교 국문과에서는 좀 다른 별명으로 통했다. “국문과의 얼굴 마담‘으로 통했고, 술을 마실 때에는 못 먹는 사람들까지도 마시게 하는 재주가 있다고 해서 ’물귀신‘, 그리고 ’마귀‘라는 별명도 있었다.
처음 교사로 부임한 곳은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 나보다 더 덩치가 큰 그 녀석들이 붙여준 별명은 꽤 많았다.
‘나폴레옹’, ‘채플린’, ‘꼬마 유령 캐스퍼’, ‘밀림의 왕자 레오’, ‘우주 소년 아톰’ 등이었다. 나는 제자들이 붙여준 별명은 무조건 좋아했다. 그런데 잠시 머물렀던 중학교 교사 시절, 학생들이 나를 ‘간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나가면 ‘간통, 간통’하며 외치곤 했다. 나는 화가 나서 어떤 놈이 시작한 별명인지 추적을 거듭하여 그 별명을 처음 사용한 녀석을 찾아냈다. “네가 간통의 뜻을 아느냐?”하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고 자기가 붙인 별명은 ‘관통’이라고 했다 한다. 관통! ‘관하는 통이 크다’.
지금의 영훈고등학교로 온 것이 1994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영훈의 첫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앗 위제트다”, 나는 위제트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알려 달라고 아이들에게 부탁했고, 그 당시 미술과 지은이라는 여학생이 아크릴판에다가 위제트 그림을 그려왔다.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지구를 지키는 환경보호 파수꾼, 만화 영화 주인공이었다.
내가 봐도 나는 위제트랑 똑같이 생겼다. 그래 좋아. 내가 이 별명 접수하마.
그리고 1997년 고3을 못 넘기고 죽는다던 근육병을 앓던 시한부 인생의 두 제자를 만나면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차갑고 비판적이고 냉정했던 내 성격과 모습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눈이 커지더니 없던 쌍커풀이 생겨났다. 쓰던 안경도 벗어 던졌다. 눈가에 주름이 생기며 얼굴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얼굴이라기보다는 이마의 빛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이후로 영훈고에서 생활하며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장애인 학교도 아닌데 왜 이리도 아픈 아이들이 많은지, 지속적인 치료를 요하는 제자 아이들이 매년 30여명, 그리고 가정의 파괴, 공부에 대한 고민 등을 안고 사는 내 사랑하는 제자들을 생각할 때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이 무렵 나에게 또 하나의 별명이 생겨났다. ‘울보선생’
나는 지금 이 '울보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교사에게 있어 사랑의 마음을 품고 눈물로 기도하고 고민하는 교사라는 것은 교육 현장의 사랑이요 희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울보선생 뿐만이 아니라 울보학생, 울보 선배, 후배, 그리고 울보아빠, 엄마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눈물의 양만큼 우리들의 영혼이 깨끗해지고 순수해지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