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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엽기살인 공판정에서
작성자
juice
작성일
2009-05-24
조회
7265

2001년 온두라스에서 밀입국한 까를로스 부스타멘떼 메디에따는 애난데일에 살면서 아침이면 세븐일레븐 주변에서 일거리를 찾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키는 작지만 뚱뚱하고 어깨가 떡벌어진 상체, 심한 곱슬머리에 짙은 콧수염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노숙해 보인다.

2005년 8월 14일 살인사건 이후 3년만에 몽고메리 카운티 순회법원에서 처음 열리는 공판에 국선 변호인 두명과 함께 피고석을 차지하고 있다. 넥타이없는 하얀 와이셔츠에 검정 싱글 양복을 차려입고 하루종일 진행되는 재판을 스페니쉬 통역으로 듣고 있을 뿐 미동도 없다.

사건당일 오전 10시경, 김씨(55세)는 애난데일 세븐일레븐 앞에서 처음만난 까를로스를 헬퍼로 불렀고, 점심에 함께 먹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메릴랜드 몽고메리로 갔다. 이미 15년전부터 단골인 미국인 친구는 서재 수리를 부탁하고 여행을 떠났다. 일은 안중에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많았던 까를로스가 주인 집 금은 보석을 스포츠 백에 쓸어넣는 현장을 김씨가 목격한다. 금품에 이미 눈이 뒤집힌 그에게 책망하며 저지하는 김씨가 고울리가 없었다. 혹시 경찰을 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흉기를 들어 김씨의 목을 여러차례 깊게 찔렀다. 10여분간 피를 토하며 신음하던 김씨가 죽자 광기어린 살인마는 미치광이처럼 주변을 정리한 후 시신을 줄로 묶고 타고온 김씨의 차에 실어 애난데일 집근처로 옮겨왔다.

손에 피를 묻힌채 정신없이 하이웨이를 달리다 심하게 좌우로 움직이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페어팩스 순찰차에 붙잡혔다. 술취한 것처럼 횡설수설 할 뿐만아니라 혼이 쏙 빠진 그가 의심스러웠지만 멕시코 태생 경찰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시신이 차 후미에 놓여있던 것을 까마득하게 몰랐다. "한인 보스가 자기대신 차를 집에 갔다 놓으라고 해서 가는 길이다" 라며 김씨의 지갑에서 차량 등록증과 확인 전화번호를 내어밀자 별반 의심없이 경고장만 발급하고 보냈다.

썪을대로 썪은 정치, 전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반복되는 내전과 혁명으로 사망자와 실종자가 속출하지만 하소연조차 할 길 없는 불안한 치안, 그 여파로 독버섯처럼 번지는 엽기적 살인, 납치, 방화 사건이 난무하는 중미 온두라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까를로스는 그 밤에 무시무시한 증거인멸 계획을 꾸민다.

삽으로 구덩이를 10 피트나 판 후 시신를 넣고, 개솔린을 뿌린 후 불을 던졌다. 강렬한 불길에 지문도, DNA 감식할 머리카락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타버린 모습을 마지막까지 확인한 후 자리를 떴다. 긴박했던 일련의 일이 마무리된 것이 15일 새벽. 그제서야 시장기와 피곤을 느낀 그는 실컷 먹고 하루종일 깊은 잠에 떨어졌고 불안한 며칠을 보냈다.

농구 운동복 상하에 운동 모자까지 눌러쓰고 버젓이 애난데일을 활보하던 까를로스가 체포된 것은 범행 후 사흘되던 날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전직 FBI 출신 집주인은 자신의 집에서 뭔가 큰 불상사가 있었던 것을 감지했고 즉각 경찰을 불렀다. 군데 군데 응고된 혈흔, 사라진 쥬얼리 박스와 금은 보석들, 급히 증거를 인멸하려고 시도됐던 어설픈 흔적들… 결정적 단서로 애난데일 세븐일레븐에서 구입한 런치와 영수증, 그리고 불에 탄 시신이 행인에게 발견되면서 수사는 급진전 되었고, 결국 잔혹하게 두번 죽였던 살인범 까를로스를 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을 수 있었다.

무심한 사람들은 벌써 3년이 됐느냐고 반문하지만 유가족은 큰 슬픔에 고통스러워한다. 가까스로 극복한 살인의 추억이 다시 들춰졌기 때문이다. 당초 플리바겐(plea bargain)을 통해 50년형을 받기로 합의 했었으나 관선 변호인은 피고가 정신질환이 있고 환청(auditory hallucination) 상태에서 벌인 범죄라며 감형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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