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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현 시인의 공개구혼장에서 느낀 작은행복의 힘
작성자
법향
작성일
2011-04-07
조회
12997



               이 름 관리자
제 목 송현 시인의 공개구혼장(자료)


.. <참고 자료>

다음 글은 제가 <샘이 깊은 물> 2001년 8월호에 발표한 공개구혼장의 전문입니다. 그 글이 나간 뒤에 <행복 출발>이라는 재혼전문회사에서 "송 선생님 같은 분이 떳떳하게 재혼을 하겠다고 공개구혼장을 낸 것은 재혼을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글 내용이 진솔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받고(비즈니스에 관한 부분은 저의 출판 메니저가 협의 함) 수락한 것입니다.

<행복출발> 광고로 발표된 "시인 송현의 공개구혼장"은 원문을 그대로 싣지 못하고(광고료가 너무 비싸서) 간단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더러 오해를 하는 분도 있어서, 원문을 보내드리오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시인의 공개 구혼장]




송현(시인. 칼럼니스트)




1.내 소개

저의 이름은 송 현입니다. 올해 쉰 넷 돼지띠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 남자입니다.(키 173센티 미터, 몸무게 80킬로그램) 이날까지 어디 아파서 약을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약이라곤 회충약 밖에 먹어본 적이 없고, 병원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다음 주에 난생 처음 종합검진 받으려고 예약했음) 고향은 부산이고, 스물 네 살 짜리 딸은 대입 수학 전문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던 스물 두살 짜리 아들은 지난 3월 에 군대에 갔습니다. 저는 동아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고 그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습니다. 1975년 월간 <시문학> 잡지에 서 정주 선생 추천으로 등단한 뒤, 시인으로, 칼럼니스트로, 동화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산은 부산에 있는 집(대지 240평)과 현재 딸과 둘이 살고 있는 서울 답십리 소재 아파트(31평형) 한 채, 그리고 제 연구실로 쓰는 장안평 오피스텔 1개(15평형), 그리고 고향에 땅이 쬐끔 있습니다. 의료보험료를 월 8만원쯤 내는데 내년에는 더 많이 낼 형편입니다.

저의 직업은 한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제가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 노릇도 하고, 공병우 타자기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도 하고, 현실문제연구소소장도 하고, 케이비에스라디오에 "송현 인생칼럼"이라는 프로 진행도 하고, 케이비에스 텔레비전에 "비지니스맨 시대"라는 프로 진행도 하고, 케이블텔리비젼에서 "캐이블스쿨 가정교육"이란 프로의 진행도 하고, 서울예술신학교문창과에서 교수 노릇도 하였으니, 한마디로 제 직업이 뭐라고 잘라 말하기 곤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중앙의 큰 신문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문화 예술인 인물 정보]방에 들어가 제 이름을 치면 제가 가수 조용필과 모델 윤정을 좋아하고 담배 안 피는 것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것이 다 나옵니다.

2.결혼 한번 실패하고, 한번 할뻔 하고

저는 서라벌고등학교 국어교사 노릇을 할 무렵인 1976년에 결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결혼 이야기를 "샘이 깊은 물"에 16년 만에 털어놓는 내 혼인의 비밀( 1992년 월)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개 구혼장도 나와 인연이 깊은 이 잡지에 발표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의 결혼은 그때만 해도 좀 특이한 결혼이었습니다. 왜냐면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네 살짜리 딸 애가 하나 딸린 여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지 않고, 결혼에 한 번 실패하고 애까지 딸린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결혼을 하여,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 말 않고 살다가 16년 만에 그 사실을 공개했더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녀와 16년을 살다가 지난 1992년에 정식 협의 이혼하였습니다.

그녀와 이혼한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제 직업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결혼할 때 제가 아내에게 제시한 조건이 딱 한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일 책을 30쪽씩 읽읍시다!]였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정신적, 영적 성장을 말합니다. 일생동안을 함께 살 부부는 함께 성장하여야 합니다. 함께 성장해야 눈높이가 비슷해지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1층에서 보는 것과 21층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 비유가 꼭 맞지는 않지만, 부부가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이처럼 전혀 다른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눈높이가 달라서 전혀 엉뚱한 시야로 세상을 다르게 보고 산다는 것은 참 불행한 일라고 생각합니다. 눈높이가 같거나 비슷하지 않으면,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면서 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제 아내는 한 달을 못 지켰습니다. 그러자 한쪽은 날로 성장하는데 반해서 한쪽은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부부의 사이가 마치 [옛날 울릉도 전화]처럼 되었습니다. 선로 사정이 나빠서 서로 "여보세요!""여보세요!"하고 고함만 지르다가 끊어지고 마는 전화 말입니다. 이렇게 서로 교신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의사 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고, 그러니 오해할 일이 생기고, 오해가 불신을 낳고, 불신이 서로 사이를 가로막는 두꺼운 벽이 되었습니다. 불신의 벽은 날로 그 두께와 높이를 더해갔습니다. 그러니 한집에 살면서도 결국은 남처럼 되었고, 마침내는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들이 생겨서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한 오년 전인가, 무슨 문화센터 행사장에서 꽃꽂이하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사실 이 여자에 관한 이야기는 안 하고 싶습니다. 한때 내가 사랑했고, 잠시나마 동거까지 시도한 여자인데, 그녀에게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칠까 하는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공개구혼까지 하는 마당에 내가 특히 여자 관계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고의적으로 숨겼다가, 뒷날이라도 이를 알게 되면, 그때는 저의 다른 진실까지 싸잡아 의심받게 되고, 그러면 더 큰 것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간략하게나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결혼에 두 번 실패하고 혼자 사는 꽃꽂이 하는 여자인데,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좋아 보였습니다. 몇 번 만나서 차도 마시고 대화하는 가운데 서로 호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그녀가 꽃꽂이 분야에서 오래 동안 일을 했는데도 그것을 한데 묶어서 책으로 출간하지 못한 것을 알고, 꽃꽂이에 관한 책을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녀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하면서, 글 쓰는 게 자신이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일을 도와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과 매력이 제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저는 그녀가 꽃꽂이에 관한 책을 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것은 학력 문제였습니다. 충청도 무슨 소도시에서 자랐는데, 부모님들이 무식하여 자기를 대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겨우 상업고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하였다면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결혼할 때 "매일 책을 30쪽씩 읽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난 오늘은 그때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설령 책을 읽지 않아도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태도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력이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보지는 않습니다."

한 일년 쯤 연애를 한 끝에 같이 살기로 하고, 성내동에 넓은 아파트를 공동 구매했습니다. 그녀가 먼저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시차를 두고, 제가 이사를 했습니다. 같이 살림을 합치고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툴 일이 생겼습니다. 연애할 때부터도 그녀에게 대해 좀 미심쩍은 부분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녀가 백날 가도 생화 한 송이 집에 사 와서 꽂은 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집안에 온통 조화로 장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결코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꾸미기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권 읽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골프 치러 가거나 틈만 나면 유한 마담들과 고스톱 치는 일과 사교모임에 화려하게 꾸미고 나가 저명인사들과 교제의 폭을 넓히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청소를 하는 것을 보면, 마치 그녀의 삶의 목적이 청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해병대 내무반 검열보다 무섭게 청소 검열을 하는 바람에 물러터진 우리 아이들이 정말 혹독하게 시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불 같은 아빠 성질을 아는 아이들은 한마디도 그 불평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책을 읽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귀담아 듣기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남을 말을 귀담아 듣기는커녕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불쑥 튀어나와 남의 말을 가로막는 명수였습니다. 그러자 나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한 것과 꼭 같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사소한 일로 시작한 싸움이 커져서 나중에 대판으로 싸운 뒤에 그녀와 성내동으로 살림을 합친지 한 달 도 안되어 헤어질 것을 합의하고 집을 부동산에 내 놓았고, 마침내 그녀와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손수건을 흔들기를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녀가 저와 헤어지고 난 뒤에 하는 여러 가지 상식 밖의 행태들을 보고는 더더욱 제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3.재혼을 하려는 이유

저는 이혼을 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부부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자유로움을 얻었습니다. 이 자유로움을 통해서 얻는 소중한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얻은 자유인데, 다시 결혼이라는 속박의 굴레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가 회의도 많이 하였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편하게 살까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제가 재혼하려는 것은, 밥하고 빨래 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를 했기 때문에 밥도 잘하고, 제가 좋아하는 간단한 음식들은 제 손으로 잘 만듭니다. 다림질도 잘하고, 단추도 잘 달고, 양말도 잘 깊고, 바짓가랑이 밑단도 뜰 줄 압니다. 이런 것을 시키자고 아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세퍼트처럼 집 지키게 하려고 아내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사실 세퍼트처럼 온종일 집을 치키는 여자는 정말 불행한 여자이고 한심한 여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낮에는 종일 일을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여자가 세퍼트 같은 일생을 사는 것을 일종의 죄악입니다. 그리고 섹스 때문에 결혼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섹스때문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쪽이 백 번 낫다고 봅니다.

제가 굳이 결혼하려고 하는 것은 제 삶의 후반부를 함께 살아갈 도반(道伴) 같은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 길 동무 말입니다. 진리나 깨달음으로 향하여 떠나는 순례의 길동무 같은 아내가 필요합니다. 흔히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되고, 슬픔을 함께 하면 반으로 준다"는 말처럼 저에게 남은 인생을 더 풍요롭게, 더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맛있는 것은 혼자 먹어도 물론 맛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는 사실을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에는 미쳐 몰랐던 것들,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들을 이제 나이 들어서야 그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 분수에 맞는 짝을 만나면 그 소중한 삶의 순간순간과 그 값진 삶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것만 아니라 정신적, 지적, 영적 즐거움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가령 무슨 책을 읽다가도 너무너무 좋은 말이 있거나, 좋은 대목이 있으면 함께 읽으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그런 동무 같은 아내가 필요합니다.

4.공개 구혼하는 이유

제가 서울 서라벌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 노릇도 여러 해 하고, 서울 예술신학대학에서 "대학국어""아동문학론""대중문화" 등의 강의도 여러 해왔고,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60분짜리 간판 프로의 엠씨도 할 정도면 말주변이 없는 것도 아니고, 허우대가 멀쩡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 동안 약 오십 여권의 책을 썼으니, 굳이 연애 편지를 잘 못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 동안 계속 사회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공개 구혼하는데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제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소중한 지혜의 편린들을 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지 말라!"는 점입니다. 저는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와 사이가 [옛날 울릉도 전화]처럼 되는 바람에 진작부터 이혼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미루어 왔습니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절대로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것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에미도 없는 집에 와서 라면을 끓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제 가슴이 메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가 사치를 하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어오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고, 아내가 엉뚱한 짓을 하면 나만 눈 감아주면 남이 어떻게 알까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참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이혼을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듯 십육년이란 아까운 세월이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참, 아까운 세월을 생각하면 땅을 치고 통곡하며 피를 토할 판입니다.

이혼을 하고 나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이혼을 할 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생각한 만큼 상처를 많이 받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정도 상처는 한 인간이 성장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아이들 때문에 십육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혼을 미루어 온 것을 너무너무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혹시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미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의 이 경험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아주 어린 애가 아니라면 더 이상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현재 자기가 가자고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며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이를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제가 꿈꾸는 행복한 생활에 대해서 조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의 큰 소망 하나는 풀을 빳빳하게 먹인 하얀 옥양목 홋청을 한 배게를 배고 잠을 자는 것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풀을 빳빳하게 먹인 옥양목 배게 홋청을 갈아 끼웠을 때, 그날 밤 저는 볼에 느껴지던 그 까끌까끌한 감촉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고, 그때 제 코에 스치던 어머니 젖냄새 비슷한 그 풀냄새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꿈꾸는 행복의 작은 원천입니다. 이런 나의 소박한 꿈을 존중해 줄 여자를 만나기 원합니다. 아내가 일주일마다 풀먹인 하얀 옥양목 베개 홋청을 갈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번거롭고 힘들다면 이주일 만에 한번 갈아주어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아니, 이 주일도 힘들다면 삼 주일에 한번 갈아주어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꿈꾸는 행복 또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이면 아내가 가족들보다 한 삼십분 쯤 먼저 일어나서, 식구들의 아침 식탁을 위해서 부엌에서 내는 그릇을 씻는 소리, 도마에 마늘을 다지는 소리, 쌀을 씻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아내는 가족들이 잠 깨지 않게 최대한 적게 내려고 해도 그래도 들리는 그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부엌에서 도마에 마늘을 찢는 소리, 우물에서 물 깃는 두레박 소리 등을 아침 잠결에서 들었습니다. 그 소리들은 이 세상 어떤 새소리보다, 어떤 악기 소리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꿈꾸는 행복 또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서로 일이 바빠도 일주일에 최소한 연속극 한 가지는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대 사람들이 숨죽여 보는 재미 있는 주말 연속극이나 수목 드라마 중 어느 것 한가지를 정해서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우에 따라서 두 사람 다, 혹은 어느 한쪽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으면 비디오로 녹화를 해 두었다가 나중에 따로 날을 잡아서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동안 한번도 이런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이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라서 못했고, 이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았을 때는 제 옆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셋째 제가 원하는 배필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저는 이 공개 구혼을 통해서 운 좋게도 제가 원하는 여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마음에 쏙 드는 여자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여자에 근접한 여자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내가 바라는 여자

제가 원하는 여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몇 가지 생각나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는 저하고 너무 많은 차이가 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호적상 나이 보다 정신적인 나이, 감각적인 나이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학력은 상관없습니다. 저는 일류대학을 나온 여자 중에서 졸업장이 아까운 형편없는 이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영어. 수학 공부 잘하여, 일류대학 다닌 여자들 중에는 학교 간판만 믿고, 공부 열심히 안 해서 제대로 된 고등학교 나온 여자보다 더 평편 없는 여자들도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일류대학 나온 여자들 중에서 공부 제대로 안한 겉멋만 든 공주병 환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런 여자는 "남편 등골 파 먹으니 조심해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비록 학력이 낮다고 해도,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베인 여자면 좋겠다는 점입니다. 종교에는 별 관심이 없는 여자면 좋겠습니다. 굳이 종교가 있다면, 남의 종교도 존중하는 그런 종교를 믿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종교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족이나 이웃들에게 기어이 전도하려고 기를 쓰는 여자는 곤란합니다. 여자의 종교 때문에 그 집안의 화목함이 깨어지고,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도 않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편협하고 독선적인 종교에 오염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장미꽃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이 세상 모든 꽃들을 다 뽑아버리고 장미꽃 한가지로 통일하고자하는 한심한 이들을 경멸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들, 이런 종교를 믿는 자들은 인류 평화에 가장 큰 장애물이요,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인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얼굴이 예쁜 여자는 사양합니다. 그 동안 내가 만난 얼굴 예쁜 여자들 중에는 공교롭게도 얼굴 예쁜 것만 믿고, 내면 가꾸는 일에 소홀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얼굴이 예쁜 여자들은 밤낮 여기 저기 싸돌아 다닌다고 공부할 틈이 없었고, 공부하지 않아도 모든 일을 쉽게 쉽게 할 수 있었지 싶습니다. 가령 못생긴 여자가 관공서에 가서 일을 볼 때 서류 한 장 빠져도 안되고, 글자 한자 틀려도 안 되는데, 예쁜 여자는 서류 한 장 빠져도 다음에 갖다주면 되고, 글자 한자 틀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담당자가 다 작성해 주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외모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정도이면 족합니다. 제가 바바리코트를 참 좋아하는데, 바바리 코트 입기를 좋아하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 멸치 젓갈을 좋아하는 여자이면 좋겠습니다. 제가 멸치 젓갈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김치도 멸치 젓갈 진액을 넣고 담고, 부추 김치도 멸치 젓갈 듬뿍 넣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그녀도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담배는 태워도 좋은데, 술은 못 마시는 여자이면 좋겠습니다.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한 모금 입에 댓다 마는 정도의 실력이면 좋겠습니다. 혹시 술꾼이라면 앞으로 시간을 두고 노력해서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면 상관없습니다. 제가 술도가와 아무 원한은 없지만, 우리 아버지가 술 마시고 주정하는데 질렸기 때문입니다. 궁핍하게 살아본 경험이 한 번 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세상 물정을 제대로 알고, 뭐가 소중한 지를 제대로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에 한 번 실패해 본 경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결혼의 소중함도 알고, 다시 한번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는 정말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 다시 결혼을 하면 아내에게 잘할 마음 가짐이 단단히 되어 있습니다. 혹시 너절한 친구 때문에 정식으로나 사사로나 춤을 배운 여자는 사양합니다. 다만 곗날 끝나고, 우루루 몰려서 호기심으로 카바레에 한 두 번 따라 가본 정도라면 상관없습니다. 쓰레기 분리 수거를 꼼꼼하게 하는 여자이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잘 하는 것이 탑골 공원에서 동강 댐 반대 데모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보기때문입니다. 화학 조미료를 싫어하면 좋겠습니다. 점이나 사주 따위에 별 관심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애완견을 미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제 딸이 애완견 쉬츠 암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걔 이름이 [딱지]인데, 이미 우리 가족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웃에게는 정말 미안하고 죄스럽지만, 애완견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2년 가까이 말을 가르쳤기 때문에 제법 말을 알아듣는 아주 귀여운 놈입니다. 저축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예금통장 넘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땀흘려 번 돈을 관리하고 함께 쓰더라도, 쬐끔 씩은 떼어 저축할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교성이 너무 좋아 가는 데 마다 인기가 좋은 여자도 사양합니다. 이런 여자는 친구 하기는 좋을지 몰라도 함께 살 아내로서는 아주 부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씨가 너무 좋은 여자도 사양합니다. [마음씨가 좋은 년은 서방이 열둘이다]라는 옛말은 정말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맺고 끊고 하는 것이 좀 분명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체부 아저씨에게 시원한 음료수 정도는 대접한 경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는데, 이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태도입니다. 위에서 든 여러 가지 조건들이 다 갖추고 있다 해도 이 한 가지가 부족하면 안됩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가 다 맞지 않아도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태도를 갖춘 분이라면 좋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태도가 된 사람은 발전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6.나의 삶

저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직업입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강연)도 할 생각입니다. 제 분수에 맞는 짝을 만나면 인도에 같이 가서 명상에 관한 공부를 좀 하고 왔으면 싶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약 오십여권의 책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 300만권 쯤 팔린 것도 있습니다. 제가 죽기 전에 약 200여권의 책을 쓸 생각입니다. 그래서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이 취해서 돌아와서 술주정을 심하게 하였고, 어떤 때는 어머니를 때리고, 발로 차고, 또 술상을 내 팽게쳤습니다. 저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하였고, 그 결심을 이날까지 거의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항상 존댓말을 했습니다.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그런 부부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투명함입니다. 투명하지 않으면 의심하고, 의심하면 오해하고, 오해하면 불신하고, 불신하면 관계가 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삶이 어찌 100% 투명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가능한데까지 투명하게 하려고 서로 노력해야 건강한 부부, 행복한 부부관계가 유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문학청년일 때 순수한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삼십년이 지나고 나이 오십이 넘어도, 아직도 그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혹시 이 공개구혼장을 계기로 제 분수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올해 말까지 교제를 하면서, 서로 주변 정리도 깔끔하게 하고, 내년 봄에 간단하게 식을 올리고 함께 살았으면 합니다.

꼭 참 중요한 한가지가 빠졌습니다. 저는 제 자식들에게 빚진 게 하나 있습니다. 아들에게는 아빠가 엄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고, 딸에게는 엄마가 아빠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이혼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뒤에 우리 세 식구가 살면서 어려움과 고통도 많았지만,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착한 내 자식들에게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위의 빚은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다행이 제 분수에 많는 배필을 만나서 재혼을 할 때까지 우리 딸이 시집을 가지 않으면 딸과, 군대간 아들이 제대하고 돌아오면 아들과, 단 일년이라도 아니 일년이 길면 반년이라도, 아니 반년이 길면 단 한 달이라도 딱지까지 다섯이서 한집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살면서 아빠가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는 지 아들에게 본을 보여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딸에게 본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식들이 결혼하기 전에 부모에게 그것을 보고 배워서 그들이 결혼을 하면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잘 살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저에게 연락을 하고 싶으신 분은 큰 책방의 안내 컴퓨터에서 제 이름을 쳐 넣으면 제가 쓴 책 이름이 주루룩 화면에 뜨는데, 그 중 두권을 골라 읽어서 읽었으면 합니다. 혹시 그럴 사정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몇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여자는 알 수 없다"(칼럼집/자유문학사), "시인 함석헌(연구서/도서출판 명상), 우리 엄마 회초리(동시집/명상) 이 중에서 적어도 두권은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지면 때문에 이만 줄입니다. 혹시 저에게 연락하고 싶으면 편지는 우편번호 130-110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373-6 황금오피스텔 901호로, 전자우편은songhyun@songhyun.com로 보내주십시오. 진실하고 성의 있게 보낸 우편물에는 반드시 답장을 해드리겠습니다.(끝)


[추신}

1)그동안 650여명이 신청했고 그 중에 배우자로 선택한 최정원 원장을 월간 퀸 2003년 1월호에 공개합니다.

2)kbs tv에서 두 사람의 결혼과정을 인간극장 5부작으로 찍어서 2003년
6월에 전국적으로 방영하였습니다.

3)두 사람은 현재 일주일 "사함나따방식(사흘 같이 살고 나흘 따로 사는 독특한 방식)으로 알콩달콩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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