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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머니가 담배를 피운이유
작성자
황금당구
작성일
2011-04-02
조회
14705

윤석산 시인/한양대교수

6·25 피란길 총 맞은 아버지 옆구리에서 피고름 흘러
보다 못한 어머니 매일 입으로 빨아냈는데…
역겨운 냄새 없애라며 친척어른이 담배 건네줘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서른 넘었을 무렵부터 태우신 담배라고 했다. 젊은 여인이 담배를 피워 문 모습은 당시로선 드문 일이었다. 1917년생인 어머니가 개방적이거나 진취적인 신여성이라서 담배를 즐기신 것도 아니었다. 더 의아했던 것은 젊은 어머니가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도 대소 친척 어른들이 한 번도 흉보거나 나무라는 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어른이니 담배를 피우시나 보다" 했을 뿐,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한참 나이 든 후, 어머니께 어떻게 담배를 피우게 됐는지, 그리고 왜 누구도 그걸 시비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사연을 여쭤봤다가 가슴 아픈 얘기를 들었다.

6·25 전쟁 당시 나는 네 살 어린아이였다. 대부분의 서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피란을 못 갔다. 북한군 이 점령한 신당동에서 9월 28일 서울 수복이 될 때까지 그냥 살아야만 했었다. 당시 아버지는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전쟁이 나기 전 잠시 우익단체의 부위원장을 맡았기에, 내무서가 눈에 불을 켜고 잡아들이려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 을 감행한 유엔군과 우리 군(軍)이 서울을 되찾기 위해 시가전을 벌이고, 인민군이 북으로 후퇴하기 시작하던 9월 26일 밤에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안전할 것이라고 낙관하신 것 같았다. 막 잠이 들었을 무렵, 방문이 열리며 장정 몇 사람이 들어섰다. 아버지는 그 밤 그렇게 붙잡혀갔다.

아버지는 남산 자락인 한남동 맞은편, 성터가 있는 산속으로 끌려갔다. 같이 잡혀간 사람은 다섯 명이었는데, 한 사람씩 나무에 묶어놓고 '직결 총살형'을 집행했다. 총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는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의식이 돌아오고, 멀리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기다리다가, 아버지는 묶인 줄을 비벼 풀고는 피가 나는 옆구리를 손으로 막으며 산길을 내려와 인근의 아는 사람 집으로 들어가 몸을 의탁했다.
 

 

 

경험이 부족한 소년병들이 고참들이 시키는 대로 캄캄한 어둠 속에서 총질을 했는데, 아버지만 운 좋게 옆구리를 관통하고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이다. 만약 의식을 잃지 않고 신음소리를 조금이라도 냈다면 다시 총질을 당했을 텐데, 천만다행으로 의식을 잃어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총상(銃傷) 때문에 내내 고생했다. 변변한 약도 없던 시절이라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가을을 지나 맞이한 겨울, 우리는 다시 1·4 후퇴로 인하여 피란을 가야만 했다. 우리 가족은 청주 인근 어머니 고모부 댁에 가 머물게 되었다. 그때 그 동네에서 어린 아이가 전염병으로 죽는 상사(喪事)가 났다. 그러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이 없었다. 피란민이 마을에 머무는 것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치도 있고 해서 아버지는 자청해서 시신을 수습하고 매장했다.

아버지의 아물어가던 총상은 그날 이후 다시 덧나서 퉁퉁 부어올랐다. 상처에는 고름이 가득했고, 서울에서 가져온 항생제는 거의 바닥났다. 어쩔 수 없이 남은 항생제를 가루로 만들어 창호지에 발라 심지를 만들어 상처 부위에 집어넣었다가 저녁이면 그 심지를 빼고 항생제를 바른 다른 심지로 바꿔 끼우는 식으로 치료를 했다. 하지만 상처는 좋아지지 않고 점점 부어올랐다. 보다 못한 어머니는 심지를 빼고, 아버지 옆구리의 상처 부위를 입으로 빨아 피고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며칠을 하니 다소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냄새조차 맡기 역겨운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으니, 어머니의 고생은 참으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 고모부께서 "얘야, 그렇게 피고름을 입으로 빠니 오죽허것냐? 담배를 피우면 그래도 좀 나을 게다" 하시며 말린 담배 한 두름을 방 안에 밀어 넣으셨다. 어머니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뒤, 그 담배를 종이에 말아 피우셨다. 이것이 어머니가 일흔이 넘도록 담배를 태우게 된 단초였다. 어머니는 담배를 말아 태우면 피고름의 역한 냄새가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다고 하셨다. 막 서른 줄에 들어선 젊디젊은 어머니가 담배를 배우게 된 데는 이처럼 그 세대가 견뎌내야 했던 아픈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연세 많은 친정어머니와 어린 자식들에, 총상을 입은 남편까지 건사하며 피란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헤아릴 길 없다. 어머니가 뿜어낸 담배 연기에는 역겨운 고름 냄새뿐 아니라 혼자 짊어져야 했던 가족의 삶의 무게까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은 아버지는 여든 넘어 사셨다. 어머니도 아흔 넘게 장수하시다가 3년 전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담배연기에 실린 그 아픔과 막막함을 나는 이제서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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