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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진-도종환
작성자
정무흠
작성일
2011-03-17
조회
17394

17 Mar, 2011

지진/ 도종환

이 제 욱 조회 수 54 추천 수 0 목록

지진/ 도종환

 

우리가 세운 세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

찬장의 그릇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명을 지르고

전등이 불빛과 함께 휘청거릴 때도

이렇게 순식간에 지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줄 몰랐다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세운 마을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폐허만이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황망함 속에서 아직 우리 몇은 살아남았다

여진이 몇 차례 더 계곡과 강물을 흔들고 갔지만

먼지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 새 풀이 돋기 전에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

종을 울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숲과 새와 짐승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좀 더 높은 언덕에 올라 폐허를 차분히 살피고

우리의 손으로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노천 물이 끓으며 보내던 경고의 소리

아래로부터 옛 성곽을 기울게 하던 미세한 진동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은 그만하기로 하자

충격과 지진은 언제든 다시 밀려올 수 있고

우리도 전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로 등을 밝히고

떨리는 손을 모두어 힘차게 못질을 해야 한다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으므로

 

- 문학사상 2010 3월호

......................................................................................

 

 무모하고도 무용한 일부 망언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재난에 대처하는 성숙한 태도를 칭송하며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 고은 시인은 ‘일본에의 예의’란 시를 통해 ‘어떻게 저 무지막지한 재앙에 입 벌려 빈 소리를 낸단 말인가. 어떻게 저 눈앞 캄캄한 파국에 입 다물고 고개 돌린단 말인가’라며 몇 천일지 몇 만일지 모를 일상의 착한 목숨들을 애도했다. 그리고 ‘인간의 안락이란 얼마나 불운인가. 인간의 문명이란 얼마나 무명인가. 인간의 장소란 얼마나 허망한가.’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일본은 새삼 아름답다. 결코 이 불행의 극한에 침몰하지 않고 범죄도 사재기도 혼란도 없이 너를 나로, 나를 너로 하여 이 극한을 견디어내고 기어이 이겨낸다.’ ‘오늘의 일본은 다시 내일의 일본이다. 내 이웃 일본의 고통이여, 고통 그 다음이여. 오늘의 일본으로 이후의 일본 반드시 세워지리다.’라며 생경함이 느껴질 정도로 그들을 격려하고 나섰다. 지난해 윤동주 문학상 수상작인 도종환의 이 시는 아이티 지진 무렵 쓴 것이겠으나 지금 우리들 마음 속 지진의 잔해를 걷어내기 위해 다시 꺼내 읽는다.

<하늘 아버지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도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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