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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복탄력성(Reslience)!!!-조춘호[영적 교훈과 풍부한 예화 해설]
작성자
정무흠
작성일
2011-02-16
조회
15768

 

조춘호 조회 수 202 추천 수 0

제 8과 회복탄력성(Resilience)

2월 19일 안식일 일몰: 6시 15분

도입)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만큼 과연 우리에게 편안한 자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 세상은 변하는데 안전한 자리란 가능한 것일까?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까지 가장 철통같은 영공을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였다고 한다. 최첨단 레이더 장치와 적기를 정확히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를 출발, 소련연방으로 들어와 크렘린궁 상공을 돌다가 붉은 광장에 착륙했을 때 전 세계는 웃고 말았다. 러시아의 철통같은 영공이 한 청년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 있는 곳이란 없다. 그러나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비로소 안전한 자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다. 소년시절부터 골리앗과의 싸움을 비롯하여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신앙으로 무장된 다윗이다. 그러나 다윗도 이제는 편안하다고 여길 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 여인을 강탈하는 죄를 저지르고 만다. 신분이 안전해도 심령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었는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시 도피생활을 떠난다. 바로 이 때 다윗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산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형통한 왕궁에서가 아니라 고난의 두려운 밤을 지내며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신앙고백을 잉태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자리는 권력의 자리도, 왕궁도, 부의 지위도 아닌 하나님 안에 있다는 발견, 바로 이것이 바로 인간의 회복에 탄력을 주는 신앙의 힘이 아닐까?

 

기억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시 46:1~3).

 

 

일요일 2월 13일

욥의 인내심

 

 

도입)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운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다.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침례 요한을 낳았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신다.

 

 

예화 1)

'실락원'을 쓴 밀턴은 매우 다정다감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당파 부자의 가정에서 성장한 매리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매리는 결혼한 지 한달만에 친정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녀는 밀턴의 청교도적인 삶이 싫었던 것이다. "나는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밀턴의 엄격한 청교도적 삶은 견딜 수가 없다." 밀턴은 인내심을 갖고 아내를 기다렸다. 2년 후, 매리는 밀턴에게 돌아와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당시 매리의 가정은 완전히 몰락한 상태였다. 반면 밀턴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아내는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남편에게 돌아왔다. 밀턴의 불행한 신혼시절은 '실락원'을 집필하는데 결정적인 소재가 됐다. 자신의 낙원을 잃음으로써 비로소 명작을 완성한 것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때로는 많은 것을 잃는다. 그러나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열매를 수확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0~11).

 

 

교훈: 고난을 겪을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는 자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다.

 

 

부가적용)

아랍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밝은 태양만을 원하지만 태양만 계속되면 우리 인생은 사막이 되고 만다. 우리 인생이 촉촉하고 푸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무지개를 좋아한다.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원한다면 소낙비를 각오해야 한다. 소낙비가 없이는 결코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경험할 수 없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은 인생을 원한다면 때로는 아픔과 고통의 소낙비를 맞아야 하고 견디어야 한다.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오래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무지개를 보는 것이다.

 

 

예화 1)

한 건물의 입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얼굴에 주름이 많고 옷차림도 허름했다. 그러나 밝은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한번은 건물의 주인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나 보지요. 표정이 항상 밝아 보여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제 걱정을 트럭에 담으면 아마 100대 분량도 더 될 것입니다." 부자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할머니는 부자에게 행복한 삶의 비결을 들려주었다. "내게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어요. 저는 고통이 닥치면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사흘을 생각하면서 사흘 동안 기다립니다. 사흘 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뜬답니다."

우리가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고민 중 90%이상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들이다. 사흘만 인내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월요일 2월 14일

속박당한 요셉

 

 

도입)

로키 산맥 해발 3천 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곧게 자라지 못하고'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한 채 있어야 한다. 이 나무들은 열악한 조건이지만 생존을 위해 무서운 인내를 발휘하며 지낸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 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아름다운 영혼을 갖고 인생의 절묘한 선율을 내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 없이 좋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온갖 역경과 아픔을 겪어온 사람니다.

 

 

예화 1)

제1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의 국방 장관이었던 '뉴턴 베이커(Newton Baker)'의 감동적인 경험담이다. 전쟁 중, 유럽의 프랑스 어느 야전 병원에서 한 병사를 보았는데, 그는 두 다리를 잃고 한 팔과 두 눈마저 잃은 불행한 청년이었다. '베이커'장관이 같은 병원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 불행한 청년이 죽지 않고 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병원장은 웃으며 "그 병사는 이 병원에서 자기를 간호해 주던 간호사와 결혼했으니 산 것이 틀림없겠죠."라고 대답했다. 그 후 몇 해가 지나 '베이커'장관은 국방장관을 사임하고 유명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재단 이사장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해 졸업식에 갔다가 박사 학위를 받는 졸업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 청년이 바로 야전 병원에서 거의 희망이 없어 보였던 그 병사였기 때문이다. '베이커'씨는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앞으로 나가 졸업장을 받는 청년의 손을 잡고 격려의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오히려 '베이커' 씨를 이렇게 위로하는 것이었다. "베이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것을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을 것이니 조금도 낙심하지 말고 더 힘차게 사십시오." '베이커'장관은 이때만큼 자기 삶에 대하여 용기를 갖게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롬 1:16~17).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

 

 

교훈: 고난은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교훈과 훈련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부가적용)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의 한 농부는 몇 해 전 '아오모리(靑森)'에 큰 태풍이 불어 사과밭의 사과 10개 중 9개 꼴로 땅에 떨어지는 피해(被害)를 당했다. 대부분의 농부(農夫)들이 떨어진 90%의 사과를 보며 낙담을 하고 있을 때, 그 농부(農夫)는 떨어지지 않는 10%의 사과를 어떻게 팔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 농부는 궁리 끝에 "강풍에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대학입시 합격 기원 선물로 팔기로 했다. "합격 사과(砂果)"의 판매는 대성공을 거두어서 농부는 태풍 피해를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다.

 

 

화요일 2월 15일 나오미

 

 

도입)

영국의 조지 왕은 형인 앨버트 빅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이어받은 뒤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과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은 긴장된 생활에서 오는 불안으로 몹시 힘들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작은 소도시의 한 도자기 공장에 들르게 되었다. 평소 도자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는 모든 일정을 마친 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공장을 둘러보았다.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안내된 그는 잘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두 개의 꽃병이 특별히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심히 살펴 보니 두 개의 꽃병은 같은 원료와 같은 타일을 사용하여 무늬까지 똑같은 것이었는데,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있는 예술품 모양을 하고 있는 데 비해 다른 하나는 투박하고 볼품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이 공장장에게 물었다. "두 개의 꽃병이 같은 원료로 만들어졌겠지만 그 느낌이나 작품의 완성도가 너무 다르오. 하나는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졌으니 이곳에 전시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곳에 두기엔 형편없는 것 같소.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두 개의 꽃병을 나란히 두는 것이오?" 왕의 물음에 공장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어졌고 또 하나는 구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은 인생을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하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합니다. 저 두개의 꽃병을 나란히 이곳에 전시해 둔 것은 그런 뜻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룻1:20).

 

교훈: 절망의 끝에 있었던 나오미는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이방인 며느리 룻의 도움으로 마침내 회복되었다.

 

 

부가적용)

어떤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이상하게 해초가 많아서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어부가 말하기를 "그렇지만 해초가 없으면 새우 새끼도 없단 말이다. 그리고 새우가 없으면 고기가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정말 우리 생활 가운데 해초 같은 장해물이 늘비하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성도들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7-18)

 

 

예화)

1895년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는 비통한 슬픔에 잠겼다. 목화재배로 유명한 이곳에 갑자기 목화바구미가 들끓기 시작했다. 목화수확은 절반으로 줄었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도시는 삽시간에 실직자와 결식자의 탄식소리에 휩싸였다. 그때 일단의 농민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은 밭에서 목화를 뽑아내고 그곳에 땅콩을 심었다. 농부들은 ‘절망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었다. 20년 후, 이곳은 ‘땅콩의 수도’로 불릴 만큼 풍요로운 도시로 변모했다. 엔터프라이즈 마을 입구에 세워진 목화바구미 기념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우리는 목화바구미에 감사한다. 그 날의 시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목회벌레여, 그대들이 준 고난에 감사하노라” 성경의 야고보는 우리에게 말한다.“시련을 만나거든 오히려 기쁘게 여기라”

 

 

수요일 2월 16일

중압감에 시달린 에스더의 생애

 

 

도입)

세상을 살다보면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을 위기라고 한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약자이다. 신앙인은 현실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사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현실을 새롭게 바꿀 수 있을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한다. 문제 해결책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에스더 4장 3절에서는 모든 백성이 죽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옷을 찢고 엎드렸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려면 문제를 피하지 말아야 한다. 에스더 4장 13절에서는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죽게 되었는데 에스더만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현실을 피해보려는 마음을 먹는다. 요령을 피운다. 그런데 요령 피운 사람 치고 잘되는 사람은 없다. 도피하거나 요령을 피우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나아가야 한다. 현실을 바꾸는 힘은 실천력이다. 에스더 4장 17절엔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는 마음만 먹는 종교가 아니다. 말만 하는 종교가 아니다. 듣기만 하는 종교도 아니다. 행동하는 종교이다. 실천하는 종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의 어려운 현실은 새롭게 바뀔 것이다.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될 이다.

 

 

부가설명)

실제로 구약성경 중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성경이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이런 책이 정경 66권 중에 끼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것을 빼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오늘 우리가 대하고 있는 <에스더서>가 그렇다. 10장으로 되어 있는 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이 책을 정경 66권 중에 끼도록 하셨다. 그렇다면 이 에스더서는 다른 성경보다 더 깊은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첫째로, 이 에스더서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나 인물은 보여 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고, (행간에 숨은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이 에스더서를 보면서 느끼고 적용하는 것은 읽는 사람들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의도가 행간에 숨어 있으니까)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 4:16~17).

 

 

교훈: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중재하는 일은 엄청난 중압감을 동반한다.

 

 

부가적용)

하나님께서는 이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면서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그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고 또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저주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세상의 어느 민족보다도 더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집트에서는 400년 동안이나 노예 살이를 해야 했고,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의 민족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당하면서 고난의 역사를 써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바벨론에 망하면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가 살아야 했다. 이 에스더 사건에서는 페르시아 제국 내에 있는 모든 유다인이 몰살을 당하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면서 낙심하고 슬퍼하는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전달하시려는 메시지는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은 결코 그들과의 언약을 잊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유난히도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면,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 속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고 계신다. 이 에스더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세밀하게 그 백성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는지 잘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목요일 2월 17일

만족의 비결

 

 

도입)

수세식으로 화장실과 욕조와 샤워 시설 정도는 요즘 필수 품목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일부 왕후장상이 아니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조선 시대에는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는 왕이나 비빈들까지도 궁궐 후원에다 차일을 쳐놓고 하늘을 지붕 삼아 목욕했다. 우리는 지금 그 옛날 어떤 특권계층의 사람도 누리지 못했던 영화를 누리고 사는 셈이다. 밟기만 하면 붕붕 날아갈 듯 치달리는 승용차를 감히 옛날의 진시황인들 상상했겠는가? 자동으로 부채질을 해주는 선풍기 하며, 그것도 모자라 요즘 널리 보급된 에어컨이 여름 더위를 무색케 한다. 얼마나 큰 행복인가? 성경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다"(전 5:10)라고 말씀하고 있다. 구한즉 메추라기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탐욕이 인간의 최대 비극이다. 이러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는 길은 절대만족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교훈: 수많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바울이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떤 상황이든지 수용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얻어진 만족감 때문이었다.

 

 

부가적용)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Christian)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에는 선을 이룬다. 우리에게는 범사가 유익하고 감사한 것뿐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은 것도 유익하다[빌립보서 1:21, KJB -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오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고 믿음으로 담대히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비록 좋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감사할 이유가 한 가지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서 불길하고 어두운 상황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았던 미국의 개척자 청교도(Puritan, 淸敎徒)들의 신앙을 들 수 있다. 1620년 12월 26일 차가운 겨울, 미동북부 해안인 '케이프코드(Cape Cod)' 연안에 입항하여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그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180톤(ton)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이지만 그 배라도 허락(許諾)해 주셨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3.2Km)의 항해였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넷째, 폭풍으로 배의 중심이 되는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섯째, 여자들 몇 명이 파도 속에 밀려들어갔으나 모두 구출됨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여섯째, 인디언(Indian)들의 방해로 상륙지를 찾지 못해 한 달을 바다에서 방황했으나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상륙지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삼 개월 반의 항해 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형편이 좋을 때만 감사한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감사이다.

지금 내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고 하나님 앞에 평화스럽고 자족하여 만족하는 얼굴을 들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얼굴 모습을 살피시고 계신다.

 

 

금요일 2월 18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흑암의 세력이 영혼의 주변에 모여들어 우리의 시야에서 예수님을 가림으로, 때때로 우리는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슬픔과 놀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기는 때때로 무섭다.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무서운 시간에 우리는 오직 속죄의 공로만을 믿고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우리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하는 한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틀림없다. 빛이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는 동안, 은혜의 능력 안에서 강하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름이 우리를 둘러쌈으로 모든 것이 캄캄하게 보일 때, 소망 중에 꾸준히 참는 데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삼켜 버리는 믿음과 순종이 요망된다. 우리는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위하여 간구해야 할 때에 너무 빨리 낙심하고, 시련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도록 열렬하게 부르짖는다”(교회증언 1권, 30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다른 이들은 견디지 못하는 어려움을 어떤 이들은 극복합니다. 무슨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➋절대로 행복한 결말이 이를 것 같지 않은 환난이나 비극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신앙이나 하나님의 약속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합니까?

➌그대가 흔히 출구가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과 대면할 시간은 단 5분밖에 없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게 희망을 주어야한다면 그대는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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