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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울증!!!-조춘호
작성자
정무흠
작성일
2011-02-07
조회
10547

우울증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불행감의 감정이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로 인한 강렬한 애도 감정과도 혼돈되어서는 안된다. 슬픔과 애도는 삶의 스트레스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다. 보통 슬픔과 애도는 의료적인 치료 없이도 불식될 수 있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 우울증은 단순히 지나가는 우울한 기분과는 다르다. 우울증은 의지나 소망에 의해 조정되는 일반적인 허약해짐의 신호가 아니다. 우울증 환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될 수 없고 나아질 수도 없다. 적절한 치료가 없다면 증상은 수 주간, 수 달간, 심지어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 우울증이 치료되지 않았을 때, 또는 불충분하게 치료되었을 때, 잠재적으로 치명적이다. 심각하고, 치료되지 않은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 중 대략 6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한다. 사람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누구에게나 정상적인 생체 리듬을 가져야 한다. 생체 리듬 중에는 감정의 리듬이 있는데 이 감정의 리듬이 잘못되었을 때 우울증이 생겨나게 된다. 우울증의 의학명인 Depression은 라틴어 Depression에서 유래 되었는데 내리누름, 가라앉음이란 말에서 유래가 되었다. 사람은 우울함을 느낄 때 기쁨이 상실되고 좌절감과 함께 주위에 관심을 잃고 정상적인 긍정적인 자극을 상실하고 만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우울증은 슬픈 기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의 양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자주 공허하고 느낌 자체가 소실되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우울증은 겉으로는 바보가 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단 회복되면 환자의 지능이나 능력에는 전혀 손상이 없는 질환이며, 후유증이 남지 않는 그나마 다행한 질병이라 할 수 있다.

기억절 :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안교•선교부 홈페이지에 다양한 교과토의자료가 있습니다.

연구 범위: 시 42편 , 31 : 10 , 39:2~7, 32:1~5, 요일 1:9, 미 7:1~7, 계21:2~4.

죄가 들어온 이후로 인류에게 우울증이나 장애 수준의 극단적 좌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수의 성경 인물들이 오늘날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받을 만한 증상을 보였다.

절망감은 우울증의 한 증상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누구든지 혹독하고 절망적인 시기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희망을 주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이생이 아니면 내세에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바랄 수 있다는 희망과 약속으로 충만하다.

물론 우울증이 심각할 때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은 이런 전문가들을 통해서도 일하신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병들었을 때, 의사나 의료 전문가를 찾는 것처럼, 유전적인 기질과 뇌의 화학적 부조화로 인해 심각한 병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전문가를 찾을 필요가 있다.

 

일요일 2월 6일

무기력한 심령

도입)

생각을 교정하는 길은 모든 생각을 감찰하는 다림줄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한 후 먼저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단이 주는 생각을 분별하여 물리쳐야 한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사단이 준 생각을 어리석게 받아 들였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여 심한 우울증으로 결국 자신을 정죄하여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건강한 생각을 유지하는 길은 잘못된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도록 성경은 권고하고 있다(살전 5:8). 소망은 사람들의 생각을 새롭게 하고 미래 지향적이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생각을 하게 한다. 믿음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가지며 사랑의 수고를 기꺼이 행할 수 있게 한다.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있기에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지성소의 휘장 안에 들어간다.(히 16:9)고 말씀하고 있다. 소망의 생각은 영혼의 닻을 지성소에 내리게 한다. 성령의 임재를 불러온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고 모든 생각을 새롭게 하므로 우울증을 치유하는 놀라운 효력이 있다. 모든 거짓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우리의 뇌 속에 자리 잡지 못하게 하므로 우울증에서 자유롭게 한다.

예화)

영국 크랜취 감독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덩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만 비추어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리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찡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늘 아버지와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다. 똑같은 은혜를 받은 자 중에도 감사하는 자는 실로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눅17:11-19) 불평 원망은 쉽고 감사란 어려운 것이다. (민14:1-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11).

교훈: 자아, 세계,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쉬우나 성경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기별을 전하고 있다.

부가적용)

우울한 사람들이 지니는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분석해 보면, 그 내용이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진다. 즉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 자신의 미래, 주변 환경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세 가지의 주제에 대한 독특한 사고 패턴을 인지삼제(認知三題, cognitive Triad)라고 한다, 첫째, 우울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들은 '나는 열등하다' ,'나는 무능하다' ,'나는 무가치하다' ,'나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지닌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자신을 평가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지니고 산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개념(self-concept)이라고 한다. 자기개념은 인간의 행동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부정적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하게 되고 결국 부정적인 자기개념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과장되게 부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우울한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을 지니고 있다. '나의 미래는 비관적이고 암담하다' , '내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이 어려운 상황은 개선될 수 없다' , '앞으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나의 심리적 고통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등의 생각이다.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부정적이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지니는 사람은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은 우울한 사람을 더욱 괴롭히며, 상황의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우울한 사람들은 주변 환경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을 지니고 있다. '내가 처한 상황은 너무 열악하다', '이 세상은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적대적이다',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 '다들 나에게 무관심하고 나를 무시하고 비난할 것이다' 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타인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위축되어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예화)

많은 사람들은 고난의 짐을 예수님에게 맡겨버리지 않고, 계속 끊임없는 불평을 함으로써 더욱더 우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평을 듣는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실망에 빠뜨린다. 매리 배철러라는 여인은 바로 그러한 만성 불평자였다. 그 여자는 목사님의 딸이었고 가정주부이며 또한 목회자인 그의 오빠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오빠에게 그의 고민을 날마다 불평하곤 했다.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던 어느 저녁에 그녀는 오빠에게 자기가 한 불평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다. 양심에 가책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니, 높이 솟아 있는 포플라 나무들이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안고 저 건너 잔디밭으로 길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다. 그녀는 '나는 저 나무들처럼 오빠에게 그림자를 지우고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왜 나는 예수님께 내 짐을 맡김으로써 슬픔을 매장하지 못할까?' 그녀는 자기 방으로 가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얻었다. 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너의 슬픔을 서슴지 말고 묻어 버려라.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걱정이 있으니 깊숙히 묻어버려라. 조심스레 숨겨서 침착하게 생각하라. 어두움의 장막이 내릴 때, 어서 주님께 말하라. 그러면 만사가 의로우리라.” 그후 그녀가 더욱 행복한 크리스챤이 되었을 때 그 글을 오빠에게 보여주고, 오빠는 그 글을 읽고 지방 신문에 실었으며, 저명한 작곡가인 필립 브리스 씨가 그 글을 읽고 작곡하였다. 매리 배철러는 한때 만성 불평자였으나 주님께 그의 모든 짐을 던져 맡겨드림으로써 우울증으로부터 완치가 되었다. 당신도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

 

월요일 2월 7일

좌절의 결과

도입)

한 수도원 정원에서 수도사가 흙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수도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후배 수도사가 다가왔다. 선배 수도사는 “이 단단한 흙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하고 부탁했다.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붓자 모두 옆으로 흘러내렸다. 선배 수도사가 흙덩어리를 망치로 깨기 시작했다. 그는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다시 후배 수도사에게 물을 부어보라고 말했다. 보드랍게 부서진 흙은 물을 흠뻑 머금었다. 선배 수도사는 말했다. “이제야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도 잘 피고 열매도 풍성히 맺을 수 있겠군. 우리도 흙과 같다네. 우리의 자아가 보드랍게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물도 주고, 씨앗도 심으시지. 그렇게 될 때 인생에 꽃도 활짝 피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거라네.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 부르지.”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없다. 우리에게는 깨어짐의 고통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나를 다루어주세요.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세요.” 깨어짐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사 38:14).

교훈: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의학적 치유와 영적 치유를 병행해야 한다.

부가적용)

최근 영국의 한 합동연구팀은 흙 속에 흔히 존재하는생물이 우울증 치료제처럼 작용한다고 학술지 ‘신경과학’(Neuroscience) 에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쥐에게 흙 속 미생물 ‘마이코박테리엄 박카이’(Mycobacte rium vaccae)를 주입한 뒤 뇌와 혈액의 성분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미생물이 면역체계에 자극을 가하며, 뇌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 ‘세로토닌’(serotonin)을 더 많이 분비시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한 연구팀은 미생물을 활용해 천식·습진·장염 등의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또한 지나치게 위생적인 환경은 아이들의 면역시스템을 약화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듯이 우리 인간은 흙과 친밀한 관계가 있다. 그 흙 속의 미생물이 인간에게 유익을 주듯이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좋은 것으로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되자.

부가적용 2)

관현악의 명지휘자 토스카니니(A.Toscanini)는 지독한 근시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로서 근시 때문에 악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연주를 할 때마다 실수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이런 그가 고민 끝에 취한 방법은 악보를 외우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속해 있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갑자기 무대에 서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유일하게 악보를 외고 있던 그가 지휘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음악회를 계기로 토스카니니는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자기의 불리한 조건을 딛고 승리한 것이다. 인생의 긴 여정에서 우리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어쩌면 토스카니니처럼 장애를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입학시험에서 낙오자가 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크고 작은 돌 뿌리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세상에 잠복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런 고난들은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씨앗이 무거운 흙덩이를 뚫고 자라나야 하듯 예비된 축복과 삶의 승리를 위해 우리도 자신을 연단시키는 계기로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13)라는 말씀에서 약속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만큼의 어려움을 주시고 그 대처 방안까지 예비하시기 때문이다.

 

화요일 2월 8일

우울증으로부터의 해방

도입) 우울증 해방

당신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떠한 긍정적인 행동을 취하고 싶지 않을 때일지라도 당신의 감정의 상태에 불문하고 행동을 취한다면 즉시 온전해 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랄프.스미스<요단출판사>중에서 -

* 인구 4~10%가 앓고 있다는 우울증, 이 우울증은 유전적 생물학적 심리적 즉 복합적 요인에 의한 질병인데 우울증 치료는 심리적 치료와 의학적인 치료도 있지만 신앙을 가지고 치료하는 방법도 그 중에 하나이다. 어둔 밤에 전등을 켜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지 듯 그 마음에 믿는 신앙이 있으면 우울증인 어둔 마음은 물러가고 마음에 참 기쁨과 평안이 찾아올 수 있다.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 39:2~4).

침묵은 근심을 더 깊게 만들었다. 하지만 말을 시작하니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모든 정서적인 장애와 마찬가지로 우울증 환자도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입을 열 필요가 있다. 이런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다. 하나님께 나아가 진정으로 뜨겁게 드리는 기도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심리적인 고통을 줄이는 안전한 방법이다.

교훈: 정서적 어려움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치료에 도움이 되며,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가장 큰 도움이 된다.

부가적용1)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다. 물질적으로 부요하면 부요할수록 우울증이 많아진다고 한다. 여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울증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정신적으로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어질 때 우울증이 다가온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교인들에게도 우울증이 올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때 회의감이 찾아올 때이다. 신앙적인 공허감이 몰려올 때 그 사람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더욱이 진정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가 더욱 많다.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일을 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답으로 오지 않자 자기 스스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에게는 그러한 우울증이 오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자기와 함께 믿기 때문이다.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넓은 하늘을 보고 아름다운 별을 보기위해서이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이른 새벽에 주님에 길을 맡기네. 그에 음성 마음을 들어 내 새벽에 먼저 와계시네 조금만 귀 기울여라. 마귀가 우울증의 모습으로 임할 수 없다. 결코 틈을 주기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정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가적용 2)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5가지

게리 채프먼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사람에 따라 5가지의의 다른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어떤 사람에겐 인정하는 말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고맙다""잘했어" "사랑해" 나는 네가 좋아"와 같은 칭찬, 격려, 애정 등을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는 것이다.

둘째, 어떤 사람에겐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함께 외식을 한다거나 산보 혹은 영화 구경을 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사랑의 행위로 여기는 것이다.

셋째, 어떤 사람에겐 "선물"이 중요한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넷째, 어떤 사람에겐 "봉사의 손길"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방 청소를 해준다거나 설거지를 대신해 주는 것 혹은 시장을 대신 봐주는 것, 업무를 도와주는 것을 사랑의 표현으로 여기는 것이다.

다섯째, 어떤 사람에겐 손을 잡아주고, 포옹하며, 안아주는 "스킨쉽"이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다.

 

수요일 2월 9일

용서받을 필요가 있음

도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만심에 가득차서 세상에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자만심에 빠져 착각하고 사는 한 여자에 대한 유머가 있다. 그 여자는 자기 미모에 자아 도취되어 항상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면서 “신부님, 저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제가 너무 아름답다고 뽐내며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제 교만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고백을 들은 신부가 칸막이 커튼을 통해 여자를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자매님 안심하세요. 그것은 죄가 아니라 착각입니다.” 자만심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빠질 때 수치를 당할 수 있다. 우리는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도 죄 많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으나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9년도‘타임지’ 2월 23일 자 표지기사에는 기도가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텍사스대 인구통계학자 로버트 흄머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독실한 신자들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결과, 교인은 비교인 보다 특정기간에 사망할 확률이 50%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죄를 감출 때 발생하는 죄책감은 심한 고통을 야기할 수 있다. 시편 32편은 다윗이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울증 환자들을 대할 때, 그들이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들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그들이 악인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신체적 장애나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관심과 동정으로 보이고 있지만, 그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야기된 정신적, 심리적 혼란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en Poe)가 쓴 <고자질하는 심장(Tell-Tale Heart)>이라는 소설을 보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마룻바닥 아래 감춘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시신을 숨김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를 원했지만, 양심의 가책은 더 커져만 간다. 하루는 죽은 사람의 심장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그 소리가 바로 자신의 심장에서 또렷하게 들리게 되었다.

물론 과거에 죄를 고백했지만 여전히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이미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음에도, 자신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며, 죄에서 비롯된 지독한 고통으로 한탄한다.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런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가장 심한 죄를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며 치유해 주신다는 약속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우리의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우리가 행했던 모든 잘못으로부터 회복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굴복하고 그의 자비와 은혜와 치유를 구하라는 뜻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부가적용)

우리나라에는 하나님이 고쳐주셔야 할 심각한 병이 다수 있다. 자살은 OECD 국가 중 1위, 음주율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 흡연율 39.6%로 OECD 회원국 중 최고이며, 도박 중독자 250만 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다 수준, 이혼율 OECD 회원국 중 1위, 짝퉁 수출 OECD 회원국 중 1위, 낙태율 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이 모든 병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부가적용 2)

신앙이 있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장수한다는 의학적 연구 발표도 있으나 이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전도하는 사람은 더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한다. 세계적인 3대 성악가인 호세 카레라스는 1987년,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서 촬영하는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진찰 결과 백혈병이라는 진단 결과가 나왔고, 의사로부터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다. 카레라스는 히스기야처럼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 백혈병을 치료해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노래하겠습니다.”그가 매일 하나님께 치료해달라고 기도한 결과, 그의 병은 깨끗하게 나았다. 그 후 그는 백혈병 재단을 세우고 그때부터 자신의 공연비의 50%를 떼어서 백혈병 환자들에게 새 희망과 복음을 전해주는 전도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노래를 부를 때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질병을 치료해주시고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가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책임져주신다.

 

목요일 2월 10일

시련을 이기는 소망

 

도입)

쉽고 편안한 환경에선 강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이 탄생하고, 통찰력이 생기고,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며, 침내 성공할 수 있다. - 헬렌 켈러

우리가 즐겨 먹는 꿀 한 숟가락은 꿀벌이 4천 2백번이나 꽃을 왕복하며 얻은 것이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 되서야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이다. 시스턴 채플에 그려진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해 본 결과이다. 성공과 실패는 한두 번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찾는 자에게 반드시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교훈: 위기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하며, 재림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부가적용)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어둠 속에서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했다. 1895년에 그는 잉글랜드에서 등이 몹시 아파 고생하고 있었다. 몇 년 전의 부상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방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여관 주인이 왔다. 아래층에 묵고 있는 여자가 큰 어려움에 처했는데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앤드류 머레이는 뭔가가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나를 위해 적어 둔 충고입니다. 이걸 그녀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역경의 시간에 이렇게 말하라. “우선, 그분이 나를 여기로 데려오셨다. 내가 이 협착한 장소에 있는 것은 그분의 뜻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안식할 것이다.” 그 다음엔 이렇게 말하라. “그분이 사랑으로 나를 보호하실 것이고, 이 시련 중에도 그분의 자녀로서 행동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또 이렇게 말하라. “그분이 시련을 축복으로 만드실 것이고,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가르치실 것이며, 주려고 작정하신 은혜를 부으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라. “그분의 선하신 방법과 시기는 그분만이 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훈련 아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여기에 있다.”


금요일 2월 11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 26:38).

예수님의 고뇌를 마음속에 그려 보라. 돕는 사람도 없었고, 제자들은 배신하였으며, 하나님과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간의 죄 짐이 그분을 짓눌렀다. 인간들이 경험한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그분의 고통에 절대 미칠 수 없었다.

“겟세마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분은 이상하게도 침묵에 잠기셨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기도와 명상을 하시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으나 당신의 마지막 고민의 이 밤처럼 이렇게 슬픔에 가득 찬 마음으로 오신 때는 일찍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서의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의 빛 가운데서 행하셨다. 바로 사탄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고무된 사람들과 투쟁할 때에 그분은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붙드시는 임재의 빛을 차단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분은 범죄자들과 같이 헤아림을 받으셨다. 타락한 인류의 죄 짐을 당신이 지셔야만 하였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이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지셔야만 하였다. 죄가 그분에게 매우 무섭게 보이는 그만큼 그분이 지셔야 할 죄악의 무게는 컸으며, 그분은 이것이 당신을 아버지의 사랑에서 영원히 쫓아내지는 않을까 염려하도록 유혹받았다.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으시고 예수께서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부르짖으셨다”(시대의 소망, 68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기도도 하고, 상담도 받고, 주님을 사랑하며, 신뢰하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그들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말씀 속에 주어진 소망과 약속을 붙잡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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