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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쁜 소식!!! 산상보훈!!! 8 복!!! (2)
작성자
정무흠
작성일
2011-01-12
조회
8882

 
   
2장 팔 복
 

비방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는 있으나 품성을 더럽힐 수는 없다. 품성은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신다. 우리가 범죄하고자 마음먹지 않는 한, 사람의 능력이든 사단의 능력이든 간에, 심령을 더럽힐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심지(心志)가 견고한 사람은 가장 고통스런 시련과 가장 절망적인 환경에 놓일 때에도 번영 중에 있을 때 곧 하나님의 빛과 은총이 그에게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일 때와 동일하다. 그의 말과 동기와 행동이 잘못 전해지고 왜곡되게 알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성패가 걸린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두기 때문에 그런 일을 괘념치 않는다. 그는 모세와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하여”(히브리서 11장 27절) 참으며,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고린도후서 4장 18절)을 바라본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고 누명을 쓰고 있는지 훤히 아신다. 그분의 자녀들은 아무리 심한 모욕과 경멸을 당할지라도 인내와 신뢰를 보이며 조용히 기다릴 만큼 여유가 있다. 그것은, 드러나지 아니할 비밀이 없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분께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33 예수님은 “사람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분께서는 당신의 청중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야고보서 5장 10절)으로 보여 주셨다. 아담의 자손 중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벨은 순교자가 되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노아는 광신자요 민심을 소란케 하는 자라는 조소를 받았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히브리서 11장 36, 35절)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택함을 받은 사자들은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국외로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이 대열에 가담하여 동일한 사업에 투신해야 하며, 그 사업의 원수들이 진리를 대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리를 위하여 일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진리가 정면에 나타남으로 모욕을 받을지라도 그러한 일을 통해 그것이 연구와 검토의 주제(主題)가 되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논쟁과 비난,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속박하기 위한 모든 시도는 깨우지 않으면 잠들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일깨워 주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의 역사에서 이런 성과가 있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고상하고 웅변가인 스데반이 산헤드린 회의 충동으로 돌에 맞아 죽었을 때, 복음 사업에는 전혀 손해가 없었다. 스데반의 얼굴을 영광으로 물들게 한 하늘의 빛과, 그가 죽으면서 드린 기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은 곁에 선 완고한 산헤드린 회원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예리한 화살과 같았다. 34 그리고 또, 핍박하던 바리새인 사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택함을 받은 그릇이 되었다. 오랜 후에, 노령의 바울은 로마의 감방에서 이런 편지를 썼다.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빌립보서 1장 15~18절). 복음이 바울의 수감을 통하여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 결과 가이사의 궁전에서까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썩지 아니하는”(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의 씨는 오히려 그것을 없애려는 사단의 노력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진다. 그분의 자녀들이 받는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되고 영혼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

비난과 핍박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은 크다. 백성들이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상급을 가리켜 보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 상급을 전적으로 내세에서만 받게 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세상에서부터 받기 시작한다. 여호와께서는 옛날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 15장 1절)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상급이다. 사람은 여호와 임마누엘, 곧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고”,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골로새서 2장 3, 9절)는 분의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더욱 넓게 열 때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그분을 알고, 그분을 소유하게 된다. 35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깨달아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를 소유하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에베소서 3장 18, 19절) 하심을 더욱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54장 17절).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하나님께 찬미하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이 기쁨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 곁에 계셨으며, 그분의 임재의 빛은 하늘 궁정의 영광으로 어둠을 밝혔다. 로마에서, 바울은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차꼬를 차고 있다는 것도 잊고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립보서 1장 18절). 그리스도께서 산상에서 하신 바로 그 말씀이, 핍박을 받고 있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의 기별 가운데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장 4절)는 말로 울려 퍼지고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태복음 5장 13절).

소금은 그 보존성 때문에 가치가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소금이라고 부르실 때는, 그들을 당신의 은혜의 백성으로 삼으신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대리자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 앞에서 한 백성을 택하신 목적은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입양시키실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세상이, 구원을 주는 그 은혜를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디도서 2장 11절). 36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 그 목적은 그로 하여금 단순히 하나님의 특별한 친구가 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당신께서 만민에게 주고자 하시는 특권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드린 마지막 기도에서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장 19절)고 말씀하셨다. 이와같이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처참한 도덕적 부패로부터 보존하는 구원의 특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소금은 첨가되는 물질과 섞여져야 한다. 그것은 또 보존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첨가물을 뚫고 들어가 그것을 절여야 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구원하는 복음의 능력과 접촉하는 것은 개인적인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구원을 얻는다. 개인의 감화는 일종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익을 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소금의 맛은 그리스도인의 생명력, 곧 마음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애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분의 의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파급적이며 진취적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 마음에 있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과 더욱 가까이 접촉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마음은 우리의 이타적인 관심과 사랑에 의해 뜨거워질 것이다. 진실한 신자들은 목표로 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침투해 들어가, 새로운 도덕적 능력을 제공하는 생명력을 발산한다.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다.

예수께서는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는 엄숙한 경고를 덧붙이셨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동안, 맛을 잃어 쓸데없이 되었기 때문에 내어버림을 당한 흰 소금이 길바닥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7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상태와 그들의 종교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나타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떠난 모든 사람들의 생애와, 냉랭하고 그리스도가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생애를 나타낸다. 그 신앙 고백이 어떠하든지 간에, 사람들과 천사들은 이런 사람을 맛이 없는 불쾌한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요한계시록 3장 15, 16절)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산 믿음이 없으면, 회의적인 이 세상에서 감화를 끼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없다. 우리가 인류의 축복과 향상을 위하여 감화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자신의 희생과 헌신에 비례된다. 현장에서의 봉사와 진실한 사랑, 그리고 실제적 경험이 없으면 도와 줄 수 있는 능력은 물론, 하늘과의 연결과 생애를 통해 발산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가질 수 없다. 만일, 성령께서 예수님의 진리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한 대리자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다면, 우리는 맛을 잃고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된 소금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충분히 받지 못함으로 우리가 믿노라고 주장하는 진리에 거룩하게 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양 세상에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무익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38 사랑은 마음을 가득 채울 때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받는 호의 때문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원래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품성을 개조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적의(敵意)를 제거하고, 애정을 고상하게 해준다. 이 사랑은 우주와같이 넓으며 천사들의 그것과 조화를 이룬다. 마음 가운데 사랑을 간직하면 그것은 온 생애를 즐겁게 해주고 온 누리를 그 고유의 행복으로 덮어 준다. 우리로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랑, 바로 이 사랑뿐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태복음 5장 14절).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그들 주변에 있는 천연계에서 실례를 자주 듦으로써 당신의 교훈을 흥미롭게 만들고 청중들의 주의를 이끄셨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창공으로 점점 높이 떠오르는 광명한 태양은 산골짝과 산의 협곡들 사이에 숨어 있는 어두운 그림자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동녘 하늘의 노을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태양 빛이 그 찬란한 광채를 대지 위에 쏟아 놓고 있었다. 잔잔한 호수의 수면은 황금빛을 반사하고 장밋빛 아침 구름을 잠그고 있었다. 39 꽃봉오리, 꽃,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이 모든 것들이 이슬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천연계는 새날의 축복으로 미소 짓고, 새들은 나무 사이에서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구주께서는 앞에 있는 무리들과 떠오르는 태양을 차례로 바라보신 다음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 태양이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에 생명을 일깨워 줌으로 사랑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나아가 오류와 죄의 암흑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빛을 널리 비추어 주어야 한다.

주변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성읍들과 마을들이 찬란한 아침빛을 받아 아주 보기 좋은 모습으로 단정하게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것들을 가리키면서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그분은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고 부언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와 어부였다. 그들의 초라한 집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으며, 그 방에 있는 등 또한 하나로 등경위에 얹힌 채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었다. 예수께서는, 이와 똑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는 빛 외에는 그 어떤 빛도 일찍이 타락한 인류에게 비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구주 예수님이 죄로 죽어 가는 세상의 암흑을 비춰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시다.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으로 이런 것이 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한복음 1장 4절).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빛을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의 생명을 받음으로써였다. 40 영혼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품성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이 그들을 세상의 빛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인간 자체에는 아무런 빛도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우리는 불붙지 않은 심지와 같고 태양을 등진 달과 같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흑암을 비출 수 있는 빛이 한 줄기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의의 태양을 향하고 그리스도와 접촉하게 될 때, 온 심령은 하나님의 임재의 빛으로 작열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단순한 빛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빛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너희는 자신을 나에게 바쳤고 나는 너희를 나의 대표자로 세상에 보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요한복음 17장 18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나타내는 통로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광명의 대근원이시지만 인간을 통해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을 방편으로 하여 주어진다. 그리스도 자신도 인자로서 세상에 오셨다. 신성과 연합한 인간이 인간과 접촉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 곧 주님의 제자 각 개인은 모두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하늘이 택한 통로이다. 영광의 천사들은 그대를 통해, 멸망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과 능력을 전달하고자 기다리고 있다. 인간 대리자가 맡은 사업을 성취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 그 때는 세상이 그만큼 허락된 성령의 감화를 강탈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빛을 비추기 위하여 분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41 단지 “빛이 비취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거하시면 그분의 임재의 빛을 감출 수 없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능력이 그들에게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에게 비출 빛이 없다면, 그것은 그들이 빛의 근원 되는 분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각 시대를 통하여,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베드로전서 1장 11절)은 하나님의 진실한 백성들로 하여금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빛이 되게 하였다. 요셉은 애굽에서 빛을 전달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순결과 박애와 효도를 통해 우상 숭배자들의 나라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허락의 땅으로 가는 동안, 그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주변 국가들에게 빛이 되었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알려졌다. 바벨론에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통하여, 그리고 바사에서는 모르드개를 통하여 밝은 빛이 왕궁의 흑암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그와같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하늘가는 길에 빛을 비추는 자들로 세움을 받았다. 그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자비와 선하심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흑암에 둘러싸여 있는 세상에 밝히 드러난다. 그들의 선한 행실을 봄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찬송을 받고 본이 되기에 합당한 품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우주의 보좌 위에 계신 것이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서 불타는 거룩한 사랑과 생애를 통해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닮은 융화의 태도는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그 곳의 탁월함을 깨닫게 한다.

42 그리하여 사람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알고 믿”(요한일서 4장 16절)게 된다. 그리고 한때 죄와 타락에 빠졌던 사람들도 순결해지고 변화되어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유다서 24절)로 나타나게 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구주의 말씀은 그분이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범세계적인 사명을 맡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이기심과 교만과 편견이 거룩한 말씀의 수호자로 임명 받은 백성들과 지상에 있는 다른 모든 민족들 사이에 견고하고 높은 장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이 모든 것을 바꿔 놓기 위해 오셨다. 사람들이 구주의 입술에서 들은 말씀은 그들이 지금껏 제사장이나 랍비에게서 들은 말과 같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벽과 이기심과 민족 차별의 편견을 헐어 버리시고, 모든 인간 가족을 위한 사랑을 가르치신다. 그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기심 때문에 달라붙어 있던 좁은 범위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모든 경계선과 사회의 모든 인위적 차이를 철폐하신다. 그분은 이방인과 이웃, 친구와 원수를 구별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가난한 사람을 우리의 이웃으로, 세상을 우리의 일터로 여기도록 가르치신다.

태양 광선이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비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빛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미치도록 계획하신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리 주님의 목적을 성취할 것 같으면, 흑암과 죽음의 음침한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한 곳에 모여서 책임과 십자가 지기를 회피하는 대신, 교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일하게 될 것이다. 43 따라서 이 “천국 복음”은 곧 온 세상에 신속히 전해질 것이다.

메소보다미아 평원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이 시대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목적이 성취되려면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분께서는 “네게 복을 주니…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장 2절)고 말씀하신다. 산상 설교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는, 복음 선지자를 통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이사야 60장 1절). 만일, 주님의 영광이 그대의 심령에 비치고, 그대가 “만 사람에게 뛰어 나고” “온전히 아름다운” 분의 미를 쳐다보고, 그대의 마음이 그분의 영광의 임재 안에서 빛나기만 하면 주님께로부터 오는 이 말씀은 그대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된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함께 변화산에서 본 일이 있는가? 그 아래 평지에는 사단에게 사로잡힌 영혼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을 해방시켜 줄 믿음과 기도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명상할 뿐 아니라 그분의 탁월함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을 뿐 아니라 그분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다윗은 명상하는 동안 불이 타올라 자신의 혀로 말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명상하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음으로 놀라운 구원의 계획 곧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고도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갈바리 십자가에서 죽음을 통해 나타내 보이신 그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으며, 또 이것을 보고 구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말을 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4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편 29편 9절). 이스라엘의 종교 시인은 거문고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시편 145편 5, 6절)고 말한다.

갈바리의 십자가는 사람들 위에 높이 들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든 영적 기능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는 거룩한 능력으로 충전될 것이다. 그리고 또, 주님을 위한 진실한 사업에 힘을 집중시키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일꾼들은 이 땅을 밝히는 산 대리자로서 세상을 향해 광선을 내뿜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 헌신하는 모든 인간 대리자들을 참으로 기쁘게 받으신다. 그분께서는 성육신(成肉身)의 사랑의 신비를 이 세상에 알려 주기 위하여 인간이 하늘과 연합하게 하신다. 이것을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노래하라. 그분의 영광의 기별을 널리 선포하고, 지경 저편을 향하여 계속 전진하라.

꾸준히 참아 낸 시련,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은 축복, 용감하게 물리친 유혹, 온유, 친절, 자비, 늘 나타나는 사랑,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의 빛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이기적인 마음의 흑암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품성에서 비치는 빛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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