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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양한 감정!!!
작성자
정무흠
작성일
2010-12-26
조회
15597

조춘호 조회 수 122 추천 수 0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기억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포심”이라했다.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운 마음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악보를 잊어버릴 것 같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잊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바로 그 부분에 가서 약속이나 한 듯이 실수를 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언 어는 사고의 골조이고 감정은 이 골조를 굳히는 시멘트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불안한 그 감정을 자주 가지다 보면 그렇게 굳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분노나 기쁨, 슬픔이나 시름, 우울하거나 슬픔, 공포나 놀람 등 일곱 가지가 있는데, 이를 칠정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살다보면 이러한 칠정의 감정들이 과도하면 각각 소속한 오장육부에서 화가 일어나게 되어, 각종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연구된 긍정적인 감정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인간의 동기부여에 긍정적인 감정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아내었다. 또한 부정적인 감정은 생존과 유지에 초점을 두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창조성과 문제해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언어가 사고의 골조라는 것과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이 바로 우리가 한 말의 이 골조를 굳히는 시멘트 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는가와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느냐고 우리의 삶의 골조를 굳히게 되는 것이기에 우리의 감정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무의식 중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의 세계를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을 보아 우리의 의식의 세계를 맑게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20)

감정은 인성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감정은 선과 악 어느 쪽이든 강력한 촉진제 역할을 한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은 그것에 따라 좌우된다.

긍정적인 감정은 만족감과 건강을 가져오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고통과 번뇌의 원인이 된다. 긍정적인 감정은 정신 건강에 이롭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행동과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감정은 전인적인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의 효과를 누리기 바라신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더 자주 경험하고 있다. 성경의 인물들도 감정의 기복을 피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성공했지만, 통제력을 잃어버린 이들은 부정적 감정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선택하고 말았다.

고통스런 감정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인 도움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무릎 꿇게 만든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 때문에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감정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결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은 우리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모든 감정을 경험하심으로 그가 창조하신 감정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정적인 감정

열 살 난 꼬마가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하고서 집에 뛰어들어 왔다. "엄마, 엄마는 사람을 미워하면 안된다고 항상 말씀하셨죠? 그러나 나는 지금 내 친구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애가 우리 반에 새로 온 친구에게 말한 무례한 말을 들었다면 엄마도 그 애를 미워하지않을 수없을 거예요."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바른 일을 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너도 알았을 것이다. 너 과자 만들 때, 누룩과 좋은 재료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알고말고요! 과자가 납작해지지요." "그래. 네 친구는 행복하고 착한 일에 필요한 좋은 재료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단다.  그래서 나쁜 `미움'이라는 누룩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서 자기도 괴롭고 남도 괴롭히는 것이지." 그 꼬마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알았어요, 엄마." 하고 대답했다. 그 꼬마는 자기 생각을  바로잡고 친구를 도와 줄 용기를 되찾았다.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삼하 13:12~13).

삼하 13장을 읽어 보라.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을 사랑하였다.

그는 아픈 것처럼 꾸미고, 다윗에게 다말의 간호를 요청하였다. 그런데 암논의 침실에서 봉사하던 다말은 그만 그에게 강간을 당한다. 이 이야기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엄청난 육체적, 정서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 그런 행위는 당시의 왕실뿐 아니라, 미래의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말을 향한 암논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라기보다 강한 성욕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다말을 “심히 미워하”게 되었다(15절). 암논은 ‘통제되지 않은 열정과 혐오’라는 두 극단적인 감정을 나타냈다. 그와 같은 정서적 상태에서는 조화롭지 않은 행동이 나타나게 마련이며, 참혹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누이의 간청을 무시하고, 암논은 강제로 그녀를 내쫓았다.

다말은 피해자였다. 그녀가 암논의 접근을 허용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오라버니를 간호하고자 했을 뿐이다. 암논의 속셈이 드러나자, 그녀는 그와 같은 악한 일이 가져올 파괴적인 결과를 설명하려고 애썼다. 원하는 것을 행하기로 작정한 터라, 암논은 충고를 듣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였다.

다말은 분노, 모욕감,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며, 현저히 낮아진 자존감으로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그의 친오빠 압살롬은 그녀에게 잠자코 있도록 조언하였다. 그리고 암논을 죽이기로 계획하였다. 다윗은 이 사건과 연루된 모든 이들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피할 수 없었다.

교훈: 하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연속적인 불행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부가적용 1)

부 정적 감정이 과거의 사건과 결합하면 인간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예가 과거에 당한 성폭력, 학대, 참사, 교통사고 등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데 벗어나지를 못하고 현재의 뇌세포 속에서 과거를 계속 구현하여 괴로워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의 기억이 귀납되면 부정적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시험을 몇 번 떨어지면 나는 시험에는 약해라는 필요 없는 무의식적 신념이 형성되게 된다. 과거의 상처가 많아 비극적 세계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일종의 숙명론을 형성하게 된다. 부정적 감정이 해소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것이 우리 몸에 신체화 되고 이것은 질병이 되게 될 수 있다. 

부가적용 2)

칼 매닝거는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현대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비하시켜서 하나님께서 주신 가능성과 창의력 마저도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뇌의 능력은 브리태니커 대영백과 사전을 다 외우고도 40개 외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으며 수십 개 대학의 필수 과정을 다 마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가능성을 열등의식이나, 죄책감이나, 부정적인 의식구조 때문에 불과 10% 내외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삶의 자세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하겠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는 지금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생활을 하면 마음이 깨끗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나를 오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있거나, 어쩔 수 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을 때, 우리 안에는 증오, 분노, 멸시와 같은 감정이 생깁니다. 때로는 재물에 대한 탐욕, 때로는 은밀한 욕망까지 우리 안에는 부정적인 요소들이 여전히 숨어 있습니다.

| 적용 |

지금 그대를 가장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내려놓으시겠습니까?

• 영감의 교훈 •

▶ 욕망의 끝은 절망임

“암논은 하나님의 요구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의 마음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가 크게 범죄하였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하여 오랫동안 참으셨다. 2년간 그에게 회개할 기회가 허락되었다. 그러나 그는 범죄하기를 계속했다. 무서운 형벌의 심판을 기다리다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음에 넘어지고 말았다”(부조와 선지자, 727).

• 기도 •

하나님,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보소서. 그것이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제거해 주시고, 내안에 하늘의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긍정적인 감정

도입)

세 계적인 명설교자인 로버트 슐러가 연말에 어느 탄광을 방문했다. 광원들의 얼굴은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눈만 반짝이는 광원들이 불쌍하게 여겨져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날마다 이 굴 속에서 석탄을 캐는 단조로운 일을 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그러자 한 광원이 석탄덩어리 하나를 집어들고 명랑하게 말했다. 『제가 캐는 이 석탄이 빛이 되고,동력이 되고 열이 되어 가정과 공장,사회와 국가를 움직입니다.그래서 제 일이 즐겁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속한 일에 대해 이런 자세로 대한 다면 우리 인생의 삶이 훨씬 행복할 것 같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에 긍정적인 감정을 갖도록 노력해 보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정서적으로 부정적인 상태에서는 심장이 뛰고, 근육이 긴장하며, 입이 마르고, 식은땀이 흐르며, 안절부절못하는 등의 즉각적인 신체적 반응들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이 오랜 시간 지속된다면 심장과 소화기의 합병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반면 열정, 친절, 동정, 온유, 인내와 같은 정서적으로 긍정적인 상태는 생동감, 밝은 표정, 타인 또는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를 가져온다. 심리학계에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긍정의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은 행복감을 얻고 정신 질환을 방지하기 위해 긍정적인 감정을 촉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고착된 부정적인 감정들이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을 주는 반면, 긍정적인 인생관은 건강과 수명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관점과 감정들이 긍정적일수록 우리는 훨씬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사랑은 분명 감정 그 이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최고의 감정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사랑과 우리가 그분께 드리는 사랑의 의미를 알기 원하신다. 사랑을 통하여 줄지어 이르러 오는 긍정적인 감정과 정서들은 바람직한 행동들을 일으킨다.

교훈: 사랑은 가장 긍정적인 감정이며 나와 타인에게 행복과 건강을 준다.

부가적용)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준비해간 물이 떨어져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때 그는 알프스 계곡 사이에 있는 맑고 깨끗한 호수를 발견하였다. 이 청년은 단숨에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몹시 시원한 물이었다. 물을 실컷 마시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경고판을 보았다. 이 물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청년의 몸에서는 열이 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구토를 하였다. 그리고 온 몸이 떨 리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계시판을 잘못 보았군요 그것은 '포이즌(poison)'이라고 쓴 것이 아니고 '포이존(poissun): 낚시금지)'이라 고 쓴 것입니다. 이 청년은 '포이존'을 '포이즌'으로 잘못보고 야단법석을 떤 것이었다.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청년은 열이 내리고 구토도 멈추고, 깨끗이 나았다. 이것이 생각의 힘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그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적으로 바람직합니까?

많은 사람이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즐거움은 사람들과의 순수한 만남과 인격적인 접촉에서 옵니다. 받은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주어진 은사를 따라 서로 봉사함으로 얻는 내면의 기쁨과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 적용 |

‘사랑’이라는 감정이 삶을 지배하도록 그대가 오늘 실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 영감의 교훈 •

▶ 최고의 감정인 사랑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때는 그들의 처지에 서도록 하라. 그들의 감정과 그들의 고충과 그들의 실망과 그들의 기쁨과 그들의 슬픔에 들어가라.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라. 그리고 그들과 처지가 바뀌었을 때 그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그대로 그들에게 행하라. 이것이 성실의 진정한법칙이다”(산상보훈, 134).

• 기도 •

하나님, 제 마음에 사랑을 주시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제 마음과 제 삶의 주변이 아름답고 행복한 감정들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감정 표현 1

도입)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아프리카에 있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아프리카에 가서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박사님은 이 학생을 만나주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가 그래도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데 환영은 못해줄망정 만나주지도 않으니까 이 학생은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그는 몹시 실망해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큰 비가 와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때 한센병을 앓는 한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보고 뛰어들어 구해주었다. 그제야 박사가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며칠 자네를 지켜보니 전혀 나를 만날 준비도, 만날 가치도 없었네. 그런데 아이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 자네에게 긍휼의 마음이 있는 것을 보았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의사나 약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일세.” 라고 말했다. 이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긍휼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야말로 황폐하고 강퍅한 이 땅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품어야 할 유일한 마음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원하시는 그분의 긍휼의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막 8:2).

막 8:1~3에서 예수께서 느끼셨던 감정은 사천 명을 먹이는 동기가 되었다. 3일 동안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이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를 염려하는 사람은 예수님밖에 없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막 1:40~41).

한센병 환자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토록 혐오하며 가련하게 여기는 질병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셨다. 그분은 그를 즉시 치료해 주시고,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다음 보내셨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 6:34).

예수님은 우리가 지도자 없이 방황할 때에도 연민을 느끼신다. 그래서 그들에게 음식을 주시기 전에 그들의 깊은 영적 필요를 느끼시고, 먼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의 동정심은 막 9:36에서도 발견된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여기서 주님은 사람들을 만지신다.

젊은 부자 법관을 만나셨을 때도, 예수님은 매우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근심하여 떠나갔다(눅 18:23).

교훈: 예수님은 배고프고, 병들고, 방황하며 때로는 물질에 얽매여 있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부가적용)

‘토마스왓슨’ (Tohmas Watson)이라는 분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라고 했다. <사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조건 없이 주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베풀어주는 호의이다. <긍휼>은 잘못한 대가로 되돌려 주어야 할 저주와 복수대신 관용과 축복을 주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품속에 이 귀중한 세 가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영국의 로이드 존스는 ‘긍휼히 여기는 것은 신자를 테스트(Test) 하는 시험지’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긍휼을 베풀면 신자이고, 그렇지 못하면 신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보고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나는 입으로만 공언하는 신자일 수 있다.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다가선 마음은 바로 이런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신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예수님은 현재 나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실까요?

나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도 많지만, 예수님만큼은 마치 내가 가장 불쌍한 자녀인 것처럼 나를 바라보실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민과 절망, 가난과 불행한 환경, 질병의 고통, 때로는 무엇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어리석음, 헛된 욕망과 꿈, 자라지 않은 믿음까지 주님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 적용 |

때로는 전혀 동정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일지라도 주님의 마음으로 어떻게 측은히 여기시겠습니까?

• 영감의 교훈 •

▶ 그리스도 사업의 동기

“그리스도의 사업은 결코 이기적 행위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압박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업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자들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부드러운 동정심 곧 그분이 당신의 생명을 버려 구원하실 만큼 귀하게 여기셨던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실물교훈, 383).

• 기도 •

주님께서 보시기에 제 인생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주님의 동정과 자비가 없다면 저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감정 표현 2

도입)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중에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쉰들러 인데 독일의 나찌 당원이다. 그러나 육백 만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그들을 구출해야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는 민족도 나라도 다르다. 쉰들러는 전쟁에 필요한 군수공장을 운영하였다. 그는 유대인들을 자신의 공장에 데려가서 일하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고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계산해보니까 850명의 유대인을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명단 그것이 쉰들러 리스트이다. 그는 실제로 1100명의 유대인을 구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은 노동자들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쉰들러를 위해서 자신들의 금니를 뽑아서 반지를 만들었다. 그 반지에는 히브리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한 자는 세상을 구한 사람입니다" 라고 그리고 그 반지를 쉰들러에게 끼워준다. 그 후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가 유대인들과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린다.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보면서 "이차를 팔았더라면 열 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절규 한다. 이런 눈물이 오늘 우리들의 눈물이 되어야 할 줄 믿는다. 예수께서 흘리신 눈물은 멸망 받을 영혼의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라고 했다. "우시며"라는 헬라어 단어는 에클라우센이다. 이 단어는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며 통곡하며 우시는 것이다. 아무도 예수님께서 왜 우시는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볼 때 예수님께서 그렇게 약한 분이 아니시다. 그런데 왜 목 놓아 통곡하셨는가?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셨다. 예루살렘성에 문제가 생겼는가? 예루살렘성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광경을 보시고 우셨다.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심판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눅 19:41).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을까? 예루살렘이 당할 운명을 내다보시고 그분은 큰 슬픔을 느끼셨을 것이다. 자신을 거절한 예루살렘 백성들을 생각할 때 그분의 슬픔은 더욱 커져 갔다. “수천의 무리가 호산나를 외치며 기뻐하고 있었지만, 산 위에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던 도성을 내려다보실 때 예수께서 흘리셨던 눈물의 의미는 거절당한 사랑과 연민의 마지막 호소였다”(엘렌 G. 화잇, 더 스피릿 오브 프로페시 3권, 20).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께서 우셨던 두 번의 사건을 기록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울지만, 예수께서는 두 번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해 깊이 슬퍼하시며 우셨다. 그분에게는 기쁨의 순간도 많았지만, 심한 정서적 고통도 적지 않았다. 많은 경우 그분은 제자들이 기별을 이해하지 못할 때 크게 탄식하셨다. 또한 예수께서는 인류에게 미친 죄의 결과를 보시고 크게 상심하셨다.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4~35).

나사로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 역시 주님을 크게 슬프게 만들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셨다고 기록했다(요 11:33). 이 말의 원어는 목과 코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동반한 매우 강한 정서적 곤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애스키루스(Aeschylus, 525~456 B.C.)는 말에서 나는 콧소리를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신약에서는 총 5회 이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그중 4회는 예수님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교훈: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그리고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우셨다.

부가적용)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귀한 액체가 있다. 바로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이다. 인간의 위대한 일들을 다 이 세 가지 액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눈물은 결코 약자의 감정이 아니라 감정 표현의 고귀한 결정체이다. 눈물에는 사랑이 담겨져 있고, 사명과 용서, 기쁨과 행복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비극은 눈물이 없다는 것이다. 웃고 즐기는 일에는 적극적인데, 감동과 눈물을 흘리는 일에는 소극적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설교자인 '로이드 존스'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가장 높은 경지의 위대함이 나타난다고 했다. 60-70년대 한국교회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새벽마다 주님의 교회에 엎드려서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우리의 선배 목회자들은 엎드려 기도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마룻바닥에서 기도했다. 그 때 수많은 믿지 않던 영혼들이 돌아와서 교회마다 새 신자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기도의 소리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어쩌면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눈물의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도우실 줄 믿는다. 기도만이 내 삶의 변화와 회복을 이루어 갈 수 있다. 한 사람이 예수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해야 하는 집에 기도소리가 끊어진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통곡하시는 주님의 눈물을 보기를 바란다. 교회가 감당해야할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면서 울고 계시는 주님의 눈물이 이 시대를 향하신 눈물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번 나 같은 죄인도 구원시키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실로 감격해 하자. 그렇다면 하늘의 구원이 절박하게 필요한 그들을 향해 거룩한 눈물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란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무엇이 주님으로 하여금 눈물을 짓게 만들까요?

죄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보다 그분을 더 슬프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습니까? 나를 구원하려는 그분의 사랑과 희생과 노력을 외면한 적은 없습니까? 사랑하여 주신 것들을, 위해서 주신 것들을 가치 없게 여기고, 정작 가치 없는 것을 구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 적용 |

주님과 같은 심정으로 그대는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립니까? 그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시겠습니까?

• 영감의 교훈 •

▶ 눈물을 배우라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본과, 우는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음으로써 타인의 감정에 참여하는 비할 데 없는 그 사랑은 진심으로 그를 좇는 모든 사람의 성품에 반드시 깊은 영향을 주게 된다. 그리하여 저들은 친절한 말과 행동으로써 피곤한 자의 발걸음을 평탄케 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복음교역자, 507).

• 기도 •

날 위해 격한 감정으로 눈물 흘리시는 주님, 이제 제 삶이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예화) 눈에 대한 보호 장치

눈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눈의 보호 장치를 생각해 보면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1.눈썹 - 빗물이 눈으로 직접 흐르지 않고 옆으로 흐르도록 해줍니다. 멋을 부린다고 싹 밀어버리고 문신을 하면 안됩니다.

2.주름살 - 가로로 생겼기 때문에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 직접 밑으로 흐르지 않고 옆으로 흐르도록 해서 눈을 보호합니다.

3.속눈썹 - 티끌이나 먼지가 속눈썹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 속눈썹에 까만 것을 묻혀 가지고 위로 말아 올려놓고 멋을 내는 것은 눈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4.눈꺼풀 - 동공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눈의 모양새를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칼로 하나 더 그어 가지고 쌍을 만드는 사람은 뭡니까? 그냥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하나면 하나에 둘이면 둘에 만족하세요.

5.눈물샘 - 눈동자를 세척해 줍니다.

6.배수구 - 그 세척한 물을 코로 흘러 보내는 하수구인데, 코가 마르지 않고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그 하수구가 막히면 눈이 항상 짓물러 있고, 눈물이 항상 고여 있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병원에 가서 막힌 곳을 뻥! 뚫어줘야 합니다.

7.눈꼽 - 눈의 배설물! 눈꼽이 많이 끼면 몸이 피곤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것은 이처럼 완벽하게,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우리를 취급하신다는 뜻입니다.

고통스런 감정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도입)

하와이에 사는 스미스씨는 1971년, 70세때 심장 마비로 쓰러졌었는데 그 후 보행이 심히 어려워 남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걷는 정도였다. 그가 방에 누워 있으면 집 뒤의 아름다운 하와이 카이 산이 보였다. 그 산은 225피트의 낮은 산으로 가파른 언덕과 같았다. 그는 그 봉우리에 십자가를 세우면 산기슭을 통과하는 하이웨이의 많은 차에서 그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죽기 전에 마지막 봉사를 해볼 결심을 한다. 무거운 십자가를 운반하려면 우선 길이 있어야 한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파른 언덕을 깎아 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날마다 조금씩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는 3년 걸려 드디어 1874년 8월 1일 산봉우리에 십자가를 세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건강을 회복하여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15년이 지난 후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스미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저 산에 세운 십자가는 불행에 대한 나의 도전의 상징입니다. 신앙이란 고통에 대한 도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십자가도 그런 것이었지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위의 말씀은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 다음은 위 말씀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다.

•세상은 기쁨으로 충만해 보인다. 신자들 가운데는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수많은 이들이 고통 중에 있는 반면, 악인들은 쾌락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일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리고 보이는 것과 실상은 많이 다르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자신보다 더 행복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슬픔과 애환과 고뇌가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주신 약속의 핵심이다. 슬픔은 단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신자들은 이 사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과거의 고통은 잊혀질 것이다. 안 좋은 과거의 추억들은 종종 더 심한 중압감의 원인이 된다. 심리치료사들은 환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기억을 제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예수께서는 마치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보고 나면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제자들의 고통도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의 종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지 않다. 예수께서는 어떤 원수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을 주실 것이다.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의인은 더 이상 어떤 것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확언하셨다. 모든 필요가 충족될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 어떤 요구나 요청도 드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교훈: 하나님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스런 감정을 영원하고 완전한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부가적용)

일본의 유명한 작가 미우라 아야꼬 라고 하는 ‘빙점’ 을 쓴 작가가 있다. 이 분은 온갖 병에 다 걸려서 종합병원과 같았다. 결핵과 파킨슨병에 걸려 있고 피부질환에 걸려 있고 암에도 걸렸다. 모든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4년 동안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병석에서 온갖 질병과 사투를 하면서 고난당하면서 절망 가운데 있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사랑하는 애인이 이 절망과 위기에 있는 이 사람을 찾아왔는데 그 남자가 미우라 미찌요라고 하는 남자였다. 이 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은혜를 받은 은혜의 이슬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이 분이 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권고하면서 미우라 아야꼬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게 했다. 감사의 마음이, 주의 은혜의 이슬이 이 여인에 임한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이슬 같은 은혜가 미우라에 임했다. 아야꼬의 가슴에 이슬이 임했다.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기적이 일어났다. 아무 소망 없던 이 여인이 움직이게 되었고 일어나게 되었다. 건강을 얻었다. 그래서 42세에 드디어 병원에서 일어나 빙점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분이 쓴 책만 240권의 저서를 남겼다. 80세가 되어도 강하게 주님을 의지하며 살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의 책은 16개국의 외국어로 번역이 되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아야꼬를 통해서 태어났다. 캄캄한 절망과 위기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가 지은 책가 운데 이런 글이 나온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접근하지 못할 장소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우러러 뵈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아팠기 때문에 기도했고 아팠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아팠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아팠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있었고 아팠기 때문에 신앙인이 되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으로

| 묵상 |

슬픔과 근심이 전혀 없는 하늘나라의 삶은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늘나라는 어린아이 같은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배만 부르면 걱정거리

전혀 없이 노래 부르면서 하루 종일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염려 없이, 옷과 외모, 체면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부모의 사랑과 돌봄을 절대 확신하는 아이들의 삶은 어쩌면 하늘나라의 삶을 닮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적용 |

하나님께서 그대의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 영감의 교훈 •

▶ 고통은 소통의 기회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다르게 만드셨다. 어떤 이는 가난하고, 혹 부하고, 혹 고통을 당하고 그래서 모두가 품성을 계발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목적이 있기에 가난한 자를 우리 중에 두셨다. 우리가 시험을 받고, 입증받고, 우리 마음에 있는 바를 계발시키도록 하셨다”(교회증언 2권, 28).

• 기도 •

아버지, 제가 세상의 슬픔과 근심의 포로가 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구합니다. 그 나라와 의가 주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해 주옵소서.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께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신성성이 더럽혀진 성전의 뜰을 훑어보시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분에게로 쏠렸다. 사람들의 음성과 소 떼들의 소리도 잠잠해졌다. 제사장과 관원, 바리새인과 이방인이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하늘 왕의 존엄과 영광으로 서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낯선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임하였다. 그분 곁에 있던 자들은 군중이 허락하는 한 멀리 물러섰다. 몇몇 제자들을 제외하고 구주께서는 홀로 서 계셨다. 모든 소리가 그쳐졌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침묵이 흘렀다. 굳게 닫혀져 있던 예수님의 입술이 열리자, 나팔소리와 같은 그분의 음성이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거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라고 능력으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치 큰 폭풍우처럼 백성들을 뒤흔들었다. 그분은 계단을 내려가시면서 3년 전에 그곳에 나타나셨던 때보다 더 큰 권세와, 모든 반대를 물리치시는 위엄과, 온 성전을 울리는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요 2:16)고 명령하셨다”(엘렌 G. 화잇, 더 스피릿 오브 프로페시 3권, 23~2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그대는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하겠습니까? 적절한 과정을 통하여 감정은 선한 행위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기초로 위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➋긍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부정적인 감정을 감소시킵니까? 예수님의 무덤에 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의 경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을 가지고 달렸습니다(마 28:8).

남아시아 지회의 도전 과제

전체 12억 인구와 140만 명 이상의 재림교인을 가진 남아시아 지회의 재림교인 비율은 820명 가운데 한 명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대부분이 최근 16년 동안 일어났습니다. 1995년 이 지회의 교인 수는 20만 명 미만이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성장의 기반은 지난 100년 이상 재림교회학교가 이 지역 도처에 세워지면서 마련되었습니다. 수천 명의 비기독교 학생들이 재림교회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인도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인 영어로 수업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학과 수업만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학생들 가운데 다수가 재림교회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침례를 받지 않은 수천 명의 학생들도 그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알게 된 기독교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재림교회학교는 학력, 학생 관리, 안전한 교육 환경면에서 우수한 명성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입학지원이 정원을 계속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들 재림교회학교에 대한 확장사업은 더 많은 학생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우며 우수한 교육도 받을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인도의 우리 교단은 “세워라. 그러면 그들이 올 것이다.”라는 격언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회중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 건물 3천여 개가 필요합니다. 이곳에서는 교회가 하나 지어지면 예수님을 알고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회중들이 계속 늘어나고 더 많은 교회가 필요하게 됩니다.

남아시아 지역에서 교회가 없는 회중들은 그들의 이웃에게 조롱을 받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그렇게 전능하다면서요? 왜 그런 분이 당신에게 교회를 지어주지 않는 겁니까?”라고 그들이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웅장한 석조 건축 양식의 신전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 회중들에게 작은 교회라도 생기게 되면 그렇게 놀리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기별을 듣기위해 찾아옵니다.

제공: 대총회 세계 선교부

이연  [2010-12-26]
음 글이 너무 길어서 설교시간 같습니다. 좀 나눠서 1,2,3..... 식으로 같은 제목이라도 나눠서 올려주심 좋겠는데...
정무흠  [2010-12-27]
이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교회 한 주일 성경 공부를 다 올려서 길어졌군요.
다음 부터는 짧게 올리도록 할께요.
저희 교회 홈페이지 grkasda.com에 좋은 글이 많습니다.
방문하셔서 읽으시고 댓글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망의 새해에 창조주의 풍성한 사랑고 은혜와 축복이 이연님의 가정과 일본에 사시는 우리 대한민족과 세계만방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정무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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