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 내숭을 떨까?
천만에! 남자의 내숭은 더 심각하다.
여자 앞에서 당당하게,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 떠는 내숭도 있고,
순진남으로 보이기 위한 고도의 내숭도 있다.
침대에 오르기 전과 오른 후로 나누어 본 남자들의 내숭 퍼레이드.
남자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
소개팅에서 만난 그. 세미정장에 젤로 머리에 한껏 힘을 준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그는 수수한 캐주얼에 눈을 살짝 가리는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 수수함과 자연스러움이 좋아 다른 남자들 다 물리치고 사귀기 시작한 지 어느덧 6개월. 여전히 그는 수수한 옷차림에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간직하고 있다. 마치 유명한 코디네이터가 손을 봐준 듯한 차림, 그러나 그는 패션이나 외모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쩌다 함께 쇼핑이라도 하면 옷이나 액세서리보다는 지하 음식 매장 더 관심이 많으니까.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 친구들의 남자 친구들처럼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와도 괜찮을 텐데 하는…. 하지만 난 여전히 그의 내추럴한 분위기가 좋다. 지나치게 외모에 신경을 쓰는 꼴불견 남자들을 보면 다시 한 번 그가 보고 싶고, 멋지게 느껴진다.
내숭남 무슨 말씀. 내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그것도 남몰래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부모님으로부터 타고난 머릿결이라고 했지만 이 자연스러운 헤어는 한달에 두 번씩 미장원에서 손질한 것이다. 그것도 강남의 고급스러운 곳에서. 그녀가 눈치 챘을지는 모르겠지만 옷도 항상 상하의를 비슷한 계통의 파스텔톤으로 입고 나간다.
쇼핑은 주로 그녀와 취향이 비슷한 학교 후배와 함께 심야에 동대문으로 향한다. 집을 나서기 전엔 면도가 덜된 곳이 있는지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고, 헤어스타일도 정돈한다는 사실. 그녀를 만나기 100m 전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으로 최종 마무리한다.
DVD방에서 그가 말만 걸어오더라?
마지막회 상영 시간을 놓쳐버린 그와 그녀. 하는 수 없이 극장 근처 DVD방으로 향했다. 이왕에 영화를 보러 온 것, 지난 프로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마음에서였다. DVD방 앞에서 잠시 동안 그녀의 고민, ‘영화관이라면 몰라도 아직 둘만의 DVD방은 좀…’.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나가자고 하면 촌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또 괜히 자신 스스로 이상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장.
한참 고민 끝에 그가 빌려온 프로는 〈와이드 와이즈 샷〉.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나오는 영화라니 그리 싸구려는 아닐 듯싶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 내 언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는가 싶게 야한 장면이 줄을 잇고. 이 남자 괜히 흥분해서 나한테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생긴다. 그러나 웬걸? 영화 속 주인공들이 실오라기 하나 없이 알몸으로 엉켜 있어도 그는 내 손끝 하나 건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머쓱한지 내용과 상관없는, 아주 뜬금없는 말을 건네온다. 자식 보기보단 순진한데!
내숭남 계집애, 보기보단 순진한데! 그런 영화는 눈 감고도 줄거리며 두 주인공의 체위를 다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비디오로 보고 또 보고 했던 거니까. 단지 그런 야한 영화를 봤을 때 그녀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거지.
조금 동요의 기미가 보이면 그날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거고, 최소한 밀실을 이용해 진한 딥키스라도 해보려는 거였는데. 아직까지는 둘만의 공간에 생소한 탓인지 잔뜩 긴장한 그녀를 차마 건들지 못하겠더군. 다음번에 조금 약한 강도의 영화를 보며 다시 시도해볼 생각이다. 한 번 덴 그녀, 두 번째는 그래도 여유가 있겠지.
지성파, 그는 섹스를 모른다?
미국에서 MBA 자격증까지 따온 그. 외고 출신에 서울대를 나와 곧바로 유학을 다녀와서인지 섹스엔 도통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끔 다른 남자들처럼 야수로 돌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의 학력과 앞으로의 진로를 볼 때 그런 것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 차라리 그의 출세와 명예를 곁에서 지켜보며 건조하지만 안정된 사랑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와의 관계를 그렇게 정리한 그녀. 공부에 지친 그를 위해 가끔 클래식 음악이나 마음을 울리는 시집 한권을 선물하기도 하고, 고운 꽃종이에 정성스레 쓴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바쁜 탓인지 답장은 없지만 만날 땐 늘 감사해하는 그를 보는 것도 좋다. 올가을에 어디선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한다는데 몰래 예매해 두었다가 깜짝 놀라게 해줄 계획을 짜고 있다.
내숭남 일본 속담에 ‘허리 아래는 인격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과학자나 금테 안경이 번쩍이는 지성파가 섹스하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거늘, 여자들은 우아한 지성파가 열심히 섹스하는 모습은 쉽게 연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섹스는 원초적 본능이다. 고로, 지성과는 안 어울린다’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하지만 고학력일수록 섹스를 밝히고 ‘변태’가 많다는 것은 각국의 조사에서 나온 이야기.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그 남자들이 펼치는 섹스의 향연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정도라는 것을 여자들은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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