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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출연료,누가 먹었나? '먹튀' 드라마 악순환의 고리
작성자
누룽멍구
작성일
2010-08-31
조회
4947



[스포츠서울닷컴ㅣ김지혜·서보현기자] 흔히 TV를 바보상자라 말한다. 생각없이 보면 바보가 된다는 경고의 의미다. 한데 TV를 보는 사람보다 TV에 나오는 사람이 바보가 될 경우가 많다. 받아야 할 것을 못받고, 챙겨야 할 것을 못챙기니 영락없는 바보(?)다.

그렇다고 TV에 출연한 연기자를 놀릴 수 없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열심히 대사를 외우고, 더 열심히 연기를 한 것 뿐. 정확히 따지면 그들은 피해자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만든 악순환의 고리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희생양이다.

곪았던 상처가 다시 터졌다. 일부 배우들의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2년째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 따르면 2010년 7월 30일 현재 방송 3사 드라마의 미지급 출연료 금액은 43억 6,000여만 원.

'한예조' 김응석 위원장은 "지난 2년간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미지급이 관행화되고 있다"며 "지난해 방송 3사는 1,677억 원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취했지만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임금체불로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먹고 도망간다는 의미의 '먹튀'. 출연료 미지급의 근본 원인은 누군가 먹고 튀었다는데 있다. 하지만 산업의 이면을 파악한다면 출연료 미지불은 단순한 '배달사고'가 아니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만든 구조적 악순환의 결과다.




◆ "1,000원주고 콜라와 새우깡 사오라는 방송사"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게 주는 한 회 제작비는 1억 원 내외입니다. 한데 요구는 거의 10억 원 수준이에요. '스타배우를 잡아와라', '스타작가를 영입해라'…. 콘텐츠보다 스타를 먼저 보기 때문에 출혈을 해서라도 스타 캐스팅에 목숨을 거는 겁니다."

드라마를 송출할 수 있는 공중파는 KBS,MBC,SBS 등 3사가 전부. 이에 반해 외주제작사는 무려 100여개가 넘는다. 방송 3사 편성을 따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 외주제작사의 고민은 철저한 갑인 방송사의 무리한 요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익명을 요구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사가 드라마를 편성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스타 연기자와 작가"라며 "아시아 시장이 커지면서 한류스타 캐스팅은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제한된 스타 인력 속에서 방송사의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고 전했다.

문제는 방송사가 외주사에 지급하는 제작비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스타와 작가의 몸값은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지만 제작비는 제자리 걸음이다.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는 회당 1억 원 내외. 미니멈 2,000만 원 수준인 남녀 주연배우의 몸값을 치루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외주사의 드라마 제작비용은 방송사에서 나오는 회당 제작비와 PPL 정도다. 드라마 앞뒤로 붙는 광고의 수익은 100% 방송사의 것이다. 결국 외주사는 드라마 판권을 통해 부족한 제작비를 마련해야 한다. 한데 이 판권의 경우에도 방송사의 몫이 크다. 대개 60% 정도 챙긴다.

"아이에게 1,000원을 주고 콜라와 초코파이, 새우깡과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한다. 아이는 어른이 무섭다. 그럼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콜라와 새우깡 먼저 사고, 나머지는 외상이다. 나중에 준다고 하는거다. 아니면? 도망가겠지." (외주사 프로듀서)




◆ "한탕주의, 일단 찍고 보는 '묻지마' 제작사"

앞선 1,000원 짜리 심부름의 예를 떠올리자. 우선 1,000원을 주고 5,000원치를 요구한 어른에게 문제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불가능한 요구를 받아들인 아이의 잘못은? 만약 이 아이가 자율의지를 가졌다면, 불가능한 요구는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한 외주제작사 대표는 출연료 미지급 원인을 제작사 탓으로 돌렸다. 부실경영의 문제며, 도덕성의 결여라는 것. 그는 "방송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제작비가 부족하면 안하면 된다. 한데 일단 판부터 벌린다. 부실 제작사의 한탕주의가 더 문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출연료를 미지급한 외주 제작사는 전체 제작사의 10% 정도다. 그 중에는 드라마 한 편을 위해 급조된 '묻지마 회사', 즉 SPC회사가 대부분이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임시적으로 만든 페이퍼 컴퍼니가 드라마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한 외주사 책임자는 "방송사에서 주는 회당 제작비를 담보로 제2, 제3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사채까지 끌어다 쓰며 방만하게 드라마를 찍는다"면서 "그야말로 한철 장사다. 드라마가 잘되면 먹고, 안되면 튀는 식이다"고 고발했다.

문제는 묻지마 제작사의 1차적 피해자는 힘없는 등급제 배우라는 것. 출연료 미지급액 대부분이 조연배우 및 등급제 배우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이는 방송 후 2개월 뒤 지급이라는 출연료 원칙을 악용한 결과다. 힘없는 배우들의 경우 선지급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스타급 배우는 출연료를 예외적으로 받기도 한다. 방송 후 즉시 정산을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하지만 힘없는 등급배우에게는 원칙을 빌미로 정산을 미룬다. 그러다 드라마가 실패하면 그 돈을 지급하지 않고 되레 회사를 공중분해시킨다"고 말했다.




◆ "악순환의 고리, 누가 끊을까…현실적 대안?"

드라마를 발주하는 방송사와 드라마를 제작하는 외주사. 출연료 미지급 사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문제가 아니다. 시청률 지상주의를 목표로 스타에 목을 매는 방송사나, 드라마 한탕주의를 과제로 묻지마 제작을 하는 제작사 공동의 문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교수는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갑을관계를 떠나 파트너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수한 드라마 콘텐츠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선 스타 위주의 편성은 버려야 한다. 배우와 작가의 네임밸류만 믿고 무조건 시간을 비워 놓는 식은 곤란하다. 실제로 최근 드라마 시청률을 살펴보면 스타 파워가 현저히 떨어진 상태. 소지섭·김하늘 조합도 애국가 시청률을 면치 못했다.

수익배분에 대한 조율도 필요하다. 시청률 연동제나 광고수익 인센티브제의 확대 시행이 그 예다. 드라마를 통한 부가 수익이 고스란히 방송사의 몫이어서는 안된다. 콘텐츠만 우수하면 제작사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시청률이 잘나오면 방송사는 무조건 돈을 번다. 제작비 1억을 투자해 3~4억 원의 광고수익을 얻는 셈"이라며 "반면 제작사의 기대수입은 판권이 전부다. 국내에선 대박났지만 해외판매가 부진하면 결국 쪽박신세"라고 하소연했다.

부실 제작사를 가려내는 노력 또한 요구된다. 재무기반이 약하거나 기획력이 부족한 신생 제작사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출연료 미지급 전례가 있는 제작사의 경우 향후 제작에 제재를 가하는 등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타들의 고통분담도 필요하다. 현재 제작여건은 그리 넉넉치 않다. PPL 규제가 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PPL 효과의 미비로 간접광고비가 턱없이 줄어들었다. 또한 해외수출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판권비용도 줄어 들었다.

한 방송사 PD는 "배우들의 몸값은 하늘을 찌른다. 일부 스타는 제작비의 반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면서 "주연급 배우의 개런티가 제작비의 40% 이상을 차지한다면 그 드라마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료에게 돌아갈 것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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