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9시 59분이었다. "지금 전화드려도 될까요"라고 문자 한통이 왔다. 강동원이었다.
'의형제' 5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인터뷰를 청했다가 마침 이날 오후5시쯤 매니저를 통해 정중하게 거절했던 터였다. 수화기를 들었다. 세 번 벨이 울리고 강동원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다"는 그는 "찾아뵙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전화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거절했어요"라고 했다. 강동원은 "그런데 집에서 누워있는데 과연 무슨 질문을 할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랬다. 강동원은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했다. '전우치'와 '의형제'의 잇단 성공은 그런 갈증에 성공적으로 답한 결과였다.
참신한 질문이어야 했다. 하지만 흥행결과에 대해 묻는 소감 인터뷰에 개성 넘치는 질문이란 쉽지 않았다. 먼저 최근 1년 사이에 자신의 필모그라피에서 흥행 1,2위 영화가 모두 등장한 데 대한 소감을 물었다. 마침 송혜교와 찍은 '카멜리아' 촬영이 지난달 끝나 집에서 소일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강동원은 "'카멜리아' 끝나고 허해서 집에서 우물 파고 있었어요"라고 심드렁히 말했다. 다른 배우들은 바쁜 일정이 끝나면 보통 화보 촬영을 이유로 해외로 떠나 휴식을 취하곤 한다. 강동원은 '전우치'와 '의형제', '카멜리아'까지 지난 2년을 쉼 없이 보냈다.
그러나 강동원은 그냥 집에서 우물을 팠다.
"제가 일을 엮어서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친한 분들이 베를린으로 화보 찍으러 가자고도 하셨는데 너무 멀기도 하구요. 귀찮기도 해서요."
얼핏 귀차니스트로 들린다. 집에서 오락을 하거나 목공을 하거나 고독을 즐기는 데 익숙한 그니깐. 그러나 "CF 제의도 많을텐데"라고 묻자 이내 목소리가 바뀌었다. "제게 맞는 것을 해야죠." 강동원은 지난 인터뷰에서 CF로 이미지가 소비되는데 적잖은 부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잇단 성공으로 발이 허공에 떠있을 법도 하지만 땅에, 아니 집에 딱 달라붙어있다.
"'의형제' 홍보가 끝나자마자 바로 '카멜리아' 촬영에 들어갔으니깐요. 실감이랄까, 그런 것도 없었어요. 그냥 현장에서 400만명이 넘었다네, 이런 정도였지."
'의형제' 성공이유를 배우의 입장에서 물었다. 그는 '의형제'에서 북에서 버림받은 공작원을 연기했다. '의형제' 성공을 놓고 갖가지 분석이 나오는 요즘, 배우만이 볼 수 있는 시각이 궁금했다.
"그냥 원래 잘될 줄 알고 선택한 것이니깐." 또 심드렁한 대답이 나왔다. 어쩌면 그답다. "다른 작품도 다 좋아해 했죠. 어느 정도 될 줄 알았던 작품도 있고 안될까 싶었던 작품도 있었고. 아, '형사'는 좀 예외였구나."
강동원은 "시나리오도 좋았고, 송강호 선배님은 워낙 잘하시고, 저야 그냥 자리를 지켰으니깐요"라고 말했다.
당연한듯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의형제'에서 강동원의 빛나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강동원의 외모는 종종 배역을 튀어나왔다. 시골 약사를 하든, 신진 소설가를 하든, 사형수가 됐든, 그의 외모는 때론 그의 노력을 배반했다.
'의형제'는 비로소 그의 외모와 노력이 나란히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강동원이 다양한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던 '전우치'에 이어 '의형제'를 하게 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물론 행운은 가만히 기다린다고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강동원은 '강동원 효과'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의형제'를 하게 된 게 '전우치'가 개봉하기 전이었으니깐요. 외부에서 볼 땐 다 죽어간다고 했을 때였죠. 그런데 이제는 강동원효과라..."
강동원은 "많이 사랑받은 것은 좋지만 다시 사랑을 잃을 수도 있죠. 과거는 흘러가기 마련이니깐요"라고 했다. 김연아 선수의 좌우명인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연상시킨다. 데뷔한지 8년, 강동원은 하늘 높이 사랑을 받았으며 땅 끝까지 지탄받기도 했다. 시간은 강동원을, 그 중심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 없지는 않았을 터. 강동원은 "송강호 선배와 소주를 먹는데 한 아이가 '전우치 아저씨'라고 인사하더라"며 웃었다.
강동원은 '의형제'에서 좋아하는 대사로 "저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를 꼽았다. 북에서 버림받고 남으로 넘어가기도 힘들지만 결코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대사였다.
강동원은 그랬다. 세파에 몸은 흔들려도 마음은 곧게 뒀다. 그냥 우물만 팠다. "저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는 강동원이 스스로에 한 말인 듯 했다.
질문이 참신하지 못했지만 강동원은 "대답이 너무 뻔하죠"라고 겸연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뻔한 말에 진심이 담기는 법, 강동원은 진심을 말했다.
스타뉴스
머니투데이 전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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